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부자작가 Jul 10. 2023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다. 죽어있다.

이것을 결정하는 건 무엇일까?

생명일까?



단지 그뿐이라면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나..?'라는 질문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물음은 내가 가장 행복할 때 오지 않는다.


내가 가장 힘들 때

괴로울 때, 비참할 때 찾아온다.


"이제 네 존재의 이유를 찾을 때야." 말하는 듯이.



자존감은 바닥을 기고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허전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만하면 살만한데 왜 그러냐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이유는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도 모른다.



네 마음을 네가 모르면 어떡해?


그러게.

대신 말해줄래?



가끔 꼭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건가 싶다.

시험을 풀듯이 정답을 찾아야 하고,

이거 아니면 저거 나눠야 하나?



인생이 시험이라면

난 우등생은 아닐 듯싶다.

낙제를 앞둔 건 아닐지.




어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부모에겐 착한 딸이었고,

어른들에겐 예의 있는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사랑받진 못해도 최소한 미움받지 않으려고 거절도 맘 편히 한 적 없다.

(과해서 처음 보는 사람, 다신 안 볼 사람의 시선도 신경 썼지만...)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려고 했다가 결국 다 잃기도 했다.

후회하고 배운 것 없이 반복했다.



그럼 이런 난 살아있던 걸까? 죽어있던 걸까?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좀비 상태인가?



조명으로 빛나는 풍경을 보며 혼자 울던 내가 떠오른다.

지금 내 눈앞엔 그때의 야경이 있다.

다른 것은 내 마음, 기분, 감정, 느낌.



당시 난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아이 낳고 10년.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겠다며 아등바등했다.

철마다 양파장아찌, 유자차, 쨈을 만들었다.

아이의 옷을 만들어 입혔다.

낮잠도 사치, 자는 시간도 쪼개 뭔가를 하고 또 했다.

잠시 쉬고 있으면 왜 이리 노는 것 같은지 몰랐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

1년이 지나면 왜 그리 한 게 없는 건지...

'나이만 먹었다.' 한탄했다.


아내.

엄마.

첫째 딸.

며느리였지만...



정작 내가 느끼는 나는 없었다.



허무함

답답함

울적함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그 모든 표현들이 사실은 하나지 않았을까?


살고 싶다고.

그만 꺼내달라고.



나는 살고 싶다고.

'나'로.

'김진아'로.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살아있던 건지 모르겠다.


이젠 숨은 쉬고 있다.

1년 전보단 어제가,

어제보단 오늘이 채워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쌓이길 기대한다.



원인은 아마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서일까.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얼 할 수 있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답을 찾고 싶다.

객관식이라면 보기가 있다면 좋겠다.

주관식이다.

0,1, -1로 찍을 수도 없다.

푸는데 얼마나 더 걸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 기간이 짧길 바랄 뿐이다.



당신은 지금 살아있나?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면 지금이 바로 질문할 타이밍이다.




당신은 '나'로 살고 있는지.



그게 당신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나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삶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