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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일까요?

봄의 절정에 만나게 되는 이름



“나는 누구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나는 보들보들 거리면서 만지면 톡톡 떨어지는 깨알 같은 재미가 있어요.

때로는 깨물어주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톡톡 터지는 느낌이 나요.

어릴 때 짝사랑을 만나면 얼굴이 붉어지듯, 태양의 붉은 빛깔 옷을 입고 있답니다.

나는 다른 꽃들이 한창 피었다가 지고 나면 봄의 절정인 5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요.

그렇게 내가 꽃을 피우면 동네 꼬마 친구들이 소꿉장난을 할 때 아빠의 밥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엄마에게는 달콤한 꿀물을 따다 주는 아빠의 선물이 되어주기도 해요.


내가 입고 있는 옷 색깔은 무척이나 다양하답니다.

붉은 적색, 고운 분홍색, 비트보다도 더 붉은 자주색,

요즘은 꽃집에서 신비한 보라색으로 만나기도 해요.


몽글몽글 꽃대에 붙어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도 하더라고요. 한여름 나답게 만들어낸 열매를 몸속에 숨겨 놓으면 동네 어귀가 떠나갈 듯이 숨바꼭질 놀이를 하기도 해요..

규칙은 조심스럽게 감춰둔 내 몸 안의 검은 진주를 찾아내는 거예요.

제일 많이 진주를 찾아내는 친구에게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목걸이를 만들어 준답니다.


한때는 내 이름으로 과자도 만들었어요. 옛날 맛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 주기도 해요.

실비아, 약불초, 서미도 라는 다양한 이름도 있고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샐비어’로 쓰이다가 최근에 새로운 이름으로 정착했답니다.

‘깨꽃’이라고 불리는 저는 누구냐고요?

두구두구두구~~ 이름도 너무 예쁜 ‘샐비아’라고 한답니다.

최근에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샐비아‘ 고귀한 이름을 가졌어요.

축하해 주실 거죠?”


어릴 때 할머니는 샐비아 꽃을 좋아하셨다. 방학 때만 시골에 있으니 친구들이랑 지내기 어색해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종종 ’ 나는 누구일까요 ‘라는 놀이를 해 주셨다.

“나는 누구일까요? 어두운 토방밑에 살고 있습니다.

까맣게 주름이 생긴 내 얼굴은 서윤이처럼 아주 못생겼습니다~“ 놀리시면

”할머니 미워, 엄마한테 갈래“ 화를 내곤 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마당 앞에 피어 있는 샐비아 꽃을 따서 너 하나 나 하나 꽃잎마다 담긴 꿀물을 나눠 주셨다.

시골 한달살이에 할머니는 그렇게 나에게 달큼한 꽃물이 되어 주셨다.

하나 둘 5월의 꽃물이 터지기를 기다리니 할머니와의 소박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느새 4월이 중반을 넘어 하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진달래는 놓쳤으나 조만간 아카시아 꽃잎들이 매달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향긋하고 달콤한 아카시아 꽃잎으로 튀김을 만들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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