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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Jan 29. 2024

우리는 왜 무임승차를 하지 않는가

도덕의 기반 (1) - 임마누엘 칸트

양심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어김없이 학생들의 "양심 고백"을 듣게 되는데, 그중에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초등학생 요금을 내고 버스를 탔다거나, 원격수업에 늦은 이유를 거짓말로 둘러댄 사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만일 한 학생이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버스를 탄다거나 원격수업에 늦은 이유를 정직하게 밝힌다면 — 즉 '도덕적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한다면 — 그러한 행위는 어떤 과정을 거쳐 실현된 것일까? 인간의 이성을 도덕적 행위의 기반으로 삼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사상을 통해 가늠해 보자.


학생들의 양심 고백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 요금을 내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어떤 사람은 쾌재를 부르며 푼돈을 아끼려 할 것이나, 또 다른 사람은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정당한 금액을 지불할 것이다. 칸트의 입장에서 볼 때 후자와 같은, 소위 도덕적인 행위가 가능한 이유는 그의 내면에 선의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지가 작용해야 하는데,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의지가 무조건적인 선을 의욕하는 경우에만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다른 의도 없이 어떤 행위가 옳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위를 의욕할 때에만 선의지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가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칸트의 저작 『윤리형이상학 정초』(1785)에 의하면, 우리는 실천이성을 통해 단적으로 옳은 행위, 즉 의무를 지시받는다. 실천이성은 의무의 형태로 무조건적으로 옳은 행위를 명령하며, 우리의 의지가 이러한 의무를 의욕할 때에야 비로소 선의지를 지니게 된다. 이 때 단순히 의무에 들어맞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오직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 만약 한 학생이 무임승차가 적발되었을 때 고지되는 벌금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정당한 요금을 지불했다면 이는 요금을 지불했다는 점에서 의무에 들어맞지만, 그렇게 의욕하게 된 의지가 의무만을 따르고자 하는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도덕적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무릇, 어떤 것이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라면, 그것이 윤리 법칙에 알맞은[따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은 또한 윤리 법칙을 위하여[때문에] 일어난 것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저 알맞음[따름]은 단지 매우 우연적이고 불안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칸트가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든 사례를 살펴보면, 천성적으로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경우는 의무에 알맞고 사랑받을 만한 행위이기는 하나 아무런 도덕적 가치를 갖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행위에는 "의무로부터 행하는 윤리적 내용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고난에 극히 얽매여 있어 타인의 고난에 자극을 받지 못한 채 무감각한 마음으로 봉사를 하는 경우 그 행위는 "오로지 의무에서[로부터]"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만이 도덕적 가치를 갖게 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실천법칙 또는 도덕법칙을 도출하는 의지의 원리를 살펴봐야 한다. 의지의 원리, 다른 말로 의욕 일반의 형식적 원리에 따르면 도덕법칙은 반드시 보편성필연성을 지녀야 하며, 이는 그 내용과는 관계없이 어떤 행위의 원칙을 도덕법칙으로 만드는 선험적 기준이 된다. 간단히 말해, 도덕적 행위를 이끄는 선의지는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선험적 형식에 의해 규정된 의지이다.


우리는 어떤 원리나 법칙의 내용 때문에 또는 그것을 따랐을 때 생기는 결과 때문에 그것들에 따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따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법칙의 형식적 특성들, 즉 그들의 보편성과 필연성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현재 따르고 있는 행위의 준칙이 무엇이든 나는 나의 준칙이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형식을 지니고 있음을 또는 지닐 수 있음을 확신하여야만 한다. 즉 나는 나의 준칙이 모든 이성적 존재들이 의무로서 따를 수 있는(또는 따라야만 하는) 원리이거나 원리일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직 이러한 형식적 속성 때문에 그것에 따라야만 한다. 내가 그러한 법칙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특정한 행위를(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을 돕는 행위를) 규정하는 원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그것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다. - 애링턴, 『서양 윤리학사』


애링턴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도덕법칙의 내용이나 그러한 법칙을 따를 때 생길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도덕법칙의 형식적 속성인 보편성필연성에 의거해 그것의 인도에 따르기로 결정한다. 우리의 이성은 이처럼 보편성과 필연성을 만족하는 도덕법칙을 의지에게 강요하는데, 이는 의지가 본질적으로 자기애에 기반해 있는 관계로 강요의 형태로 규정하지 않으면 도덕법칙에 따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은 스스로 입법한 도덕법칙을 통해 의지를 강제하며, 이러한 이성의 지시를 공식화한 것을 정언명령이라 부른다. 정언명령이란 앞서 언급한 보편성과 필연성을 만족하는 도덕법칙을 정식화한 것으로, 그 행위가 무조건적으로 선하고 옳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를 하여야 한다는 이성의 명령이다.


이성이 그 혼자만으로는 의지를 충분하게 규정하지 못한다면, 즉 의지가 언제나 객관적인 조건들에 합치하는 것은 아닌, 주관적인 조건들(어떤 동기들)에도 종속하는 것이라면, 한마디로 말해, (인간의 경우가 실제로 그러하듯이) 의지가 자체로 온전하게는 이성에 맞지 않다면, 객관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인식된 행위들이 주관적으로는 우연적이고, 그러한 의지를 객관적인 법칙들에 맞게 규정하는 것은 강요이다. -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만일 이성이 스스로 도덕법칙을 입법한다면, 이 때 이성이 사용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윤리형이상학 정초』에 제시된 다섯 가지 정식 중 제1정식과 제3정식에 비추어 이성의 입법 기준을 살펴보자. 먼저 보편법칙의 정식이라고도 불리는 정언명령 제1정식은 실천이성의 근본 법칙으로,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선험적 형식에 따라 의무를 확립한다.


"네가 그에 따라서 행위할 수 있는 의지의 준칙이 마치 보편적 법칙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여기에서 '준칙'은 의욕의 주관적 원리를 의미하며, '보편적 원칙'은 실천법칙(도덕법칙), 즉 객관적 원리를 의미한다. 특정한 주관적 원리가 객관적 원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준칙이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형식적 조건을 만족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만일 한 학생이 "무임승차가 적발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 돈을 내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된다."라는 준칙을 세웠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이러한 준칙을 절대적으로 보편화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이 준칙에 따라 무임승차를 해도 좋다고 의욕할 수 있는가? 만일 이와 같은 준칙이 보편화될 경우 운영 자금이 부족해진 운송회사가 대중교통 운영을 중단하게 될 수 있으며, 대중교통 자체가 사라진 경우에는 무임승차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학생이 세운 준칙 역시 실현이 불가하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거짓 약속의 준칙("만일 거짓 약속을 하는 것이 나를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나는 기꺼이 거짓 약속을 할 것이다")이 보편법칙이 될 수 없음을 논증한다. 모든 사람이 이 준칙에 따라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모두 거짓 약속을 해도 좋다는 것을 나는 의욕할 수 있는가? 만일 모든 사람이 거짓 약속의 준칙에 따라 행위한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약속한 바를 믿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준칙에는 내가 거짓 약속을 통해서 얻으려는 바를 결코 이룰 수 없다는 "자기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대해 경험이 없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도, 나는 단지 자문하기만 하면 된다. '너 또한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가?' 하고.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준칙은 버려져야 할 것이다. -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정언명령은 "무임승차를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당위의 형태로 표현되며, 행위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어떠한 목적도 전제하지 않는다. "네가 벌금을 내고 싶지 않으면, 무임승차를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특정한 조건을 전제하는 경우 이는 특수한 목적을 욕구하는 주체에게만 타당한 가언명령이기 때문에,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니지 않는다.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두 가지 형식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명령은 결코 의무, 즉 도덕법칙이 될 수 없다.


한편 정언명령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자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지닌 경향성(욕구)을 거슬러 이성이 명령하는 법칙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법칙에 종속되지 않은 인간의 자율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선한 행위를 도출하는 선의지는 자유의지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는 인과적 자연법칙에서 벗어나 오직 이성을 통해 자기 입법한 도덕법칙만을 따르는 의지이다. 도덕법칙과 자유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 "자유는 도덕법칙의 존재 근거이고, 도덕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이다." 즉, 인간은 자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도덕법칙을 입법할 수 있으며, 자신의 경향성(욕구)을 거슬러 도덕법칙을 따르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을 통해 스스로 자유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이처럼 도덕법칙은 이성적 존재의 자유를 통해서만 존재하며, 이 때 도덕법칙을 스스로 입법하는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를 인격이라고 부른다. 인격이란 도덕적 가치의 근원이자 도덕법칙의 근거가 되는 존재, 다시 말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존재이다. 이성을 가진 모든 존재가 목적 그 자체라는 사실에 기반하여, 모든 이성적 존재들에 대해 일관된 방식으로 행위해야 한다는 정언명령 제3정식, 즉 인간성의 정식이 도출된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해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칸트는 인간성의 정식을 "최상의 실천 근거"로 규정하는데, 이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른 모든 이성적 존재에 대해서도 옳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부과하는 모든 의무를 우리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앞서 제시한 보편법칙의 정식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성의 정식은 보편법칙의 근거가 되는 최상의 실천 명령이다. 이와 같은 정식에 따르면 한 학생이 수업에 늦은 이유를 둘러대고자 교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다른 사람을, 이 사람도 동시에 자기 안에 목적을 포함하고 있음을 무시하고, 한낱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는 자신에 대한 학생의 처신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나의 견해가 아닌 칸트의 입장에서 사례를 해석한 것이다). 이처럼 모든 도덕법칙 수립의 근거는 객관적으로는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형식적 요건에 있고, 주관적으로는 인격을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목적성, 즉 인간 존엄성의 존중에 기반한다.


이제 나는 말한다 : 인간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하며, 한낱 이런저런 의지의 임의적 사용을 위한 수단으로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그의 모든, 자기 자신을 향한 행위에 있어서 그리고 다른 이성적 존재자를 향한 행위에 있어서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서 보아야 한다. -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결국, 인간 개개인은 도덕법칙의 입법자인 동시에 자신이 입법한 도덕법칙을 스스로 따르는 존재라고 정리할 수 있으며,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개인, 즉 보편성과 필연성의 조건을 만족하는 의무에 따라서만 행위하는 사람은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 따라 필연적으로 그러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법칙에 대한 존경심은 나의 의지가 실천법칙에 복종하고 있다는 일종의 깨달음으로, 법칙 자체를 나의 의무로 받아들이는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의 서두에서 제기된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만일 한 학생이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버스를 탄다거나 원격수업에 늦은 이유를 정직하게 밝힌다면, 그와 같은 행동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실현될까? 칸트에 따르면, 두 경우에 드러나는 학생의 "정직한 행동"은 먼저 그가 선천적으로 지닌 실천이성에 의해 보편성과 필연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한다고 판단됨에 따라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 즉 정언명령의 형태로 표현되었을 것이다("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정당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거짓으로 둘러대서는 안 된다"). 이에 따라 학생은 스스로 입법한 도덕법칙(실천법칙)에 복종함으로써 의지가 무조건적인 선을 의욕하게 하고, 이러한 선의지에 의거하여 선한 행위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이 경우 학생은 푼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자연적인 경향성(욕구)에 맞서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학생이 욕구나 충동에 이끌려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규정하지 못했다면 그는 타율적인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성을 기반으로 도덕의 존재 방식을 논증한 칸트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칸트와 달리 "이성만으로는 어떠한 법칙도 확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를 통해 도덕의 토대를 감정에 두고자 하는 시도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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