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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4. 그 여자네 집




연년생인 여동생과 나는 다정한 사이라기보다는 아웅다웅하는 친구 같은 사이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도 육탄전으로 싸웠을 만큼 상극인 면이 있다. 그래도 취향은 매우 비슷한 편이다. 일례로 둘 다 대학생 때, 추석에 같이 고향에 내려가려고 터미널에서 만나면 칼라모양만 다르고 아예 똑같은 체크 패턴의 옷을 입고 나타날 정도이다. 요즘도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보면 같은 책을 읽고 있거나,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가 많아서 놀랄 때가 많다.   




동생도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마음이 더 넓은 내가 대학가를 다 돌던 273번 버스를 타고 동생네 학교에 얼굴을 보러 가곤 했다. 대학교 2개가 맞닿아 있던 우리 동네에 비하면 캠퍼스가 작아서인지 그 동네에는 식당도 맛있는 집이 없고 변변한 주거시설도 없어보였다.   




내가 그랬듯 동생도 조금이나마 나은 방을 찾아 자주 이사를 했는데 가서 볼 때마다 기함을 하곤 했다. 볕도 공기도 제대로 안 들고, 너무 춥고 보안도 허술한 방. 부모님이 보셨으면 우셨을 것 같은 방. 아무리 잠만 자는 방이라지만 고된 하루를 끝내고 돌아와서 마음을 내려놓기는커녕 마음을 더 무거워지게 만드는 방. 나도 그런 방에 살고 있었지만 아토피가 있는 동생이 그렇게 사는 건 너무 속상했다.   




졸업 후 동생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고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20대 직장인 같았지만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치매 초기이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 집에 살기 시작해서 아침에도, 점심시간에도, 퇴근 후 저녁에도 두 분을 챙기는 것이 동생의 일상이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임을 잘 알기에, 동생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지난 해 말 동생이 결혼을 해서 신랑이 근무하는 도시이자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동생이 결혼을 하는 것도 신기하고, 결혼해서 같은 도시에 자리를 잡은 것도 신기했다. 신혼집에 처음 갔을 때 아랫집이 아이들의 발소리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일 수도 있으니 간식만 간단히 먹여 아파트 뒤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놀이터에서 놀다보니 언덕배기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보였다. 산책광인 나는 그런 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라 셋째는 업고 애 둘을 끌고 언덕배기를 올랐다. 올라가서 보니 산에 길을 내서 만든 소담한 공원이었다. 나에게 최고의 집이란, 햇빛과 깨끗한 공기가 드는 집 그리고 산책 나갈만한 자연이 가까운 집인데 동생 집이 그랬다. 내 맘에 쏙 들 필요는 없었지만 맘에 쏙 들었다.   




동생은 돈 낭비하는 거 싫어하고 필요 없는 물건 쟁이는 건 질색인지라 집에 소파는 없고 거실바닥에 시어머니께서 주신 면카페트 한 장 뿐이었다. 침대도 사지 않았고 두터운 요와 이불을 깔고 잔다 했다. 하지만 동생의 미니멀하우스는 양가 어머님들의 '결혼하면 주려고 했던 것들'의 공격으로 좀 더 생기를 띄게 되었다. 주방서랍은 손님들이 오면 써야할 그릇들로 채워지고,베란다에는 꽃기린 화분까지 이사를 왔다.   




동생의 취향대로 꾸며진 공간을 보는데, 우리에게 차가웠던 서울의 그 고시원방이 떠올랐다. 행복에도 자격이 있다면, 동생은 그 자격에 차고 넘쳤다. 고생과 편안함 사이에 균형이 있다면, 이제는 마땅히 편안함의 순서였다. 좋은 집에 산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지만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편안한 주거환경은 이 새로운 가정의 행복에 분명히 한 몫을 할 거라 믿었다.  








지난주엔 처음으로 동생네 가서 잠을 잤다. 남의 집에서 자는 걸 워낙 꺼리는 나지만 제부는 출장을 갔고, 동생도 조카들이랑 한 번 자보고 싶다해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퇴근하고 7시에 도착한 동생은 옷도 못 벗고 요리를 시작해서 나를 위해 준비해놓은 등뼈국에 다진 양념을 넣어 끓이고, 아이들을 위해 다진 부추를 넣어 계란찜을 만들었다. 남동생을 위해서는 파절이 위에 삼겹살을 얹어 내놓았다. 집에서는 정신없이 구워서 먹이기 바빴는데 남이 구워서 예쁘게 담아준 고기를 먹으니 대접 받는 느낌에 황홀해졌다.   




남동생은 우리 집만의 삼겹살 소스인 케첩, 진간장, 후추 섞은 소스를 다른 사람들과 고기 먹을 때 만들어줬더니 이상하다고 했다는 소식으로 우리를 분개하게 했고, 나는 식기 세척기가 와서 이제 좀 살만하다며 조잘대고, 여동생은 '아빠가 계셨다면'하는 말로 우리를 조금 서글프게 했다. 우리 가족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쉴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실감난 저녁이었다.  





보이는 저 아파트는 아니에요 ㅎㅎㅎ




다음 날 새벽 '집에서 싸는 놈, 밖에서도 싼다'는 말대로 둘째가 오줌을 싸서 4시 반에 잠을 깼다. 동생이 사고 싶었던 단 하나의 가구, 널따란 6인용 원목 식탁에 앉아 책을 보다가 거실 베란다창에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 게 보여서 거실 바닥으로 옮겨 앉았다. 하늘이 흐린지 동쪽 하늘이 뿌옜지만, 이내 온화한 빛으로 밝아졌다.   




연초록, 진초록의 나무들이 산책욕을 자극했고, 커다란 나무들이 손닿을 듯 지척에 있던, 독일에 있는 나의 첫 신혼집이 떠올랐다. 3층집의 비스듬한 지붕 아래 다락집이라 한 가운데에서만 둘이 함께 서 있을 수 있던 집. 비가 내리면 빗방울이 창문을 귀가 아프게 때리고, 눈이 내리면 카스텔라처럼 창문 위에 네모났고 푹신푹신하게 쌓이던 집. 김용택 시인이 그의 시 '그 여자네 집'에서 쓴 대로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을 감고 떠올리면 그 곳에 살던 행복감이 고스란히 옮겨오는 집.   




그런 집 하나가 내 맘에 지어진 게 살면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동생에게도 이 집이 그런 집이 될 것이다. 그 여자의 취향대로 꾸며진 첫 집, 방 한 칸이 아니라 집 한 채를 가진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집. 공간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억으로 채워질 집.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그 풍경이 박제되어 마음에 박힐 집.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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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육아

#가정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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