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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3. Sunshine in my soul




'우울'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어였다.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첫째는 태어났을 때부터 피부에 붉은 기가 돌더니 일주일 정도 지나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고름이 잡혔다. 항생제를 엄청 써서 겨우 나았지만 그 때문에 나도 제대로 몸조리를 못 하고 병원에서 분유 수유를 한 탓인지 다시 모유수유를 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는 백일에도 6키로를 조금 넘을 정도로 저체중아인데다가, 밤잠도 잘 안 자서 돌까지는 밤낮 없이 3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했다.




게다가 유학 생활에서 막 돌아온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도 체력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어라,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이것저것 산후우울증에 대한 처방이 있지만 아이가 유별나서 맡길 수 없다는 둥, 돈이 없다는 둥 나 스스로 그 벽을 허물기를 어려워했다.




어쩌면 육아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감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싶고, 쉽게 짜증내고 분노하는 나의 인격에 절망했다.








둘째를 임신해서는 호르몬 때문인지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회사에 있던 남편에게 전화해서 징징댈 때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둘째가 태어나고 백일 무렵부터 아이 피부에 문제가 생기니 내 새끼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내가 우울해하고 있으면 아이는 더 힘들고 더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한 기분이 들어도 우울함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가벼운 우울감은 미리 방어하고, 빠져도 나오는 시간도 단축되었다. 육아를 한 시간만큼 우울증 대처 능력도 향상된 것이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도 '우선 전시상황인 백일까지만 잘 버티자'라고 굳게 마음을 먹어두어서인지 웬만해서는 멘붕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백일까지는 수월하게 지나갔다. 우울해질라치면 재빨리 대책을 강구했다. 평생 한 번도 안 사본 목걸이랑 팔찌도 사보고, 밤중수유할 때는 큰 애들이 잠을 설치든 말든 스탠드 켜놓고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었다.




셋째 막달에 만났던 선배 애 셋 맘께 우울할 때 오히려 집안일을 했다는 팁을 배웠는데 가끔은 그 방법이 통하기도 했다. 우울하다고 집안일을 놓으면 집안꼴 때문에 우울감이 깊어지기 때문에, 꼼짝하기 싫어도 음악을 틀어놓고 좀 치우면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고 깨끗해진 모습에 기운이 다시 날 때도 있었다.




셋째 만5개월 때는 바다가 보고 싶어 셋을 데리고 강릉으로 2박3일 여행도 다녀왔다. 첫째, 둘째가 5개월 무렵일 땐 1박 2일 외출로도 벌벌 떨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만6개월, 이유식을 시작할 시기가 다가오자 '지금도 너무 힘든데 어떻게 여기다 일을 하나 더 하나' 걱정이 되면서 가끔씩 스멀스멀 왔다 갔다 하던 우울감이 자주 느껴지고 점점 깊어졌다. 부끄럽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죽으면 아무 것도 신경 안 쓰고 좀 푹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쉬고 싶다는 뜻의 극단적인 표현이었다.









5월의 마지막 날, 첫째가 감기로 인해 열이 나서 며칠째 집에 있어서 세 아이를 보느라 너무 지쳐있었다. 첫째는 앓으면서 계속 엄마를 찾고, 집안일은 쌓여갔다. 일기장엔 이번 주는 너무 힘들어서 기분이 좋은 때가 드물다고 적혀있다. 결국 남편이 하루 쉬기로 했는데 내가 계속 예민하니 남편은 내 눈치 봐야 되서 너무 힘들다고 화를 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내가 좋아하는 산림공원에 가자고 했다. 큰애 열나는 데 어떻게 나가냐고 했는데 남편은 그래도 우울할 땐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우겨서 승낙했다.




남편과 나 사이엔 이런 저런 줄임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빡방위'로 빡침방지위원회의 준말이다. 내가 6년 동안 임신 출산 육아를 3번 반복한 만큼 남편도 그동안 나의 우울증으로 인한 수없는 피해를 겪었고 그도 살기 위해서 여러 연구를 거듭하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가 '빡쳤을 때'는 3가지 방법뿐이다. 첫 번째, 뭐든 먹인다. ABC 초콜릿 하나라도 찾아내 먹이면 좀 진정이 된다. 두 번째, 어디든 데리고 간다. 세 번째, 먹이고 데리고 나간다.







이 날도 애 셋을 데리고 겨우 공원에 도착해서 좀 걸으면 기분이 풀리겠다 싶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큰애들이 배고프대서 남편은 셋째 데리고 김밥 사러 가야했다. 한참을 기다려 김밥을 다 먹이고 이제 좀 걸어보려고 했는데 5분도 안 되어 둘째가 계속 안아 달라 보챈다. 답답하지만 여느 때처럼 아이들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비가 와서 습기를 머금은 대기 때문에 좀 후덥지근하긴 했지만 나무와 풀들은 더욱 싱싱해보였다. 낙엽송들과 전나무들 사이를 노니는 바람소리에 기분이 좀 풀렸다. 키 큰 나무들 정상 사이의 틈으로 강렬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숲의 무성한 풀들과 키 작은 나무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 자리의 풀들은 어쩌면 오직 그 시간에만 햇빛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빛이 들어오는 이 시간을 풀들은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 작은 풀은 몇 시간 받는 그 햇빛으로 나머지 시간의 차가운 그늘과 어두운 밤을 견뎌야 할 것이다. 기다려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날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 짧지만 강렬한 햇빛 샤워를 즐기고 있는 키 작은 나무에서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저 나무도 어떤 날에는 햇빛을 기다리다 지쳐서 나는 왜 저 큰 나무처럼 하루 종일 빛을 받을 수 없냐고 따져 묻지는 않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본 '꼭대기의 수줍음(Crown Shyness)'이라는 사진도 떠올랐다. 사진에는 나무의 꼭대기 가지들이 겹쳐서 자라지 않고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퍼즐조각처럼. 과학자들도 명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해충을 공유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가설도 있다. 어쨌든 이를 통해 나무들은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으며, 더불어 낮은 곳의 식물들도 햇빛을 받아 숲은 더욱 풍성해진다. 나무들도 서로 말 없이 '배려'한다는 게 놀라웠다.





동시에 지금 나도 거목 같은 남편에게 배려 받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일도 쉬고, 짜증을 받아주고, 애 셋을 봐주고 있는 남편의 배려가 따듯한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 햇빛이 있어서 지금까지 내가 잘 버텼구나 싶었다. 그의 배려와 사랑이 나의 우울을 치료하는 햇빛이었다.




집에 돌아와 낮잠까지 자고 일어나니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내 기분이 어떤지 조차 인식하지 못 하고 아이들과 집안일만 생각하고 지내기에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게 오히려 생경했다. 햇빛 덕분에 내 몸과 마음의 눅눅한 습기가 싹 가셨나보다. 아이들이 거실서 노는 소리가 새들의 지저귐처럼 정답게 들린다. 내가 햇빛을 받고 나니 다시 내 아래의 풀들을 돌아볼 힘이 다시 도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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