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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5. True Colors





얼마 전 아홉 번째 결혼기념일이 지났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 남편이 직장에서 퇴사를 했다. 주 6일 출근에 야근이 잦은 직장이었기에 둘 다 매우 지쳐있었고, 뒷일이야 어찌 되든 반갑기까지 한 퇴사였다. 결혼기념일 아침 모처럼 남편은 늦잠을 자고, 나는 아이들과 먼저 아침을 먹었다. 늦게 일어난 남편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했다. “당신, 혼자만의 시간 좀 가질래?” “응응.” 두 번의 '응'으로 강한 긍정과 환희를 표현했다.




남편이 선물받은 카페 쿠폰을 쓰기로 하고 다 같이 카페에 갔다. 나만 혼자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남편은 아이들과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남편 커피는 테이크 아웃해서 주차장으로 가져다주었다. 남편에게 커피를 배달하며 짐짓 미안한 표정으로 “여보, 괜찮겠어?” 물었다. 안 괜찮다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 “고생해.”를 잽싸게 붙이고 손을 흔든다. 아이들은 “왜 엄마아빠만 후식 먹어!”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 엄마아빠는 너희들 보려면 커피가 필요해.”라고 응수한 뒤 신이 나서 반 뛰다시피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이층에 자리 잡고 앉아 좋아하는 소설가 조조 모예스의 소설 '허니문 인 파리'를 펼쳐들었다. 읽기 시작하니 내가 얼마 전 아주 재밌게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당신이 남기고 간 소녀'의 앞 이야기였다. 아는 사람을 만난 것 마냥 반갑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이제 막 결혼 생활을 시작한 두 부부의 신혼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남편과 나는 20대 초반에 만나 25, 26살일 때 결혼을 했다. 그가 나의 첫 '남자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이 시대의 희귀템이며 패션 테러리스트로 위장한 다이아몬드임을 알아차렸기에 부모님의 엄청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설득해서 결혼에 성공했다. 3년 연애를 했지만 장거리 연애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신혼시절은 신혼 여행지였던 통영에서 먹었던 꿀빵처럼 달달하고 포근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결혼의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그런 시기였다.




그러나 그 3년 동안 우리는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이 때 처음으로 결혼은 부부가 될 뿐 아니라 부모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어렴풋이 배웠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첫째가 태어난 뒤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다. 당시 신랑은 귀국 직후라 일이 없었고 내가 레슨을 해서 돈을 벌었다. 식구 한 명이 는 것뿐인데 먹이고 재우고 빨래하는 일은 두세 배가 된 듯 했다. 갑자기 등 떠밀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집안일에, 삶에 허덕였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결혼이 아니었어! 내가 살고 싶던 삶이 아니었어!' 부르짖었다.






방바닥이 색종이로 가득찰 줄, 진정 난 몰랐었네






그는 음악을 하고, 나는 그 옆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결혼에 대한 나의 환상이었다. 그 환상 속에는 마주 보고 앉아 맛있게 식사하는 우리는 있지만, 냉장고에서 시들어버린 부추를 꺼내 다듬고 음식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모습은 없었다. 그 환상 속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은 있지만, 쭈그려 앉아 걸레질을 하는 모습은 없었다. 다정히 장보는 우리의 모습은 그려봤지만, 가득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모습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일찍 결혼을 '결단'했기에 잘못된 결혼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혼에 대한 책도 정말 많이 읽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육아의 파도는 너무나 거세서 책 속의 조언은 까맣게 잊혀져버렸다. 가족이라는 배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를 젓는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졌고, 탈선(脫船)하고 싶을 뿐이었다.








둘째가 4살 때 남편은 석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다음해 셋째가 태어나는 바람에 자체 육아휴학을 하고,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 취직을 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하지 못하는 남편은 눈빛이 늘 굶주려보였다. 남편이 보기에도 내 눈이 그러했겠지.




세 아이 육아로 지친 어느 날 밤, 나는 언제 마음껏 책 보고 글을 쓸 수 있냐며 투덜댔다. 예전에는 공감해준답시고 함께 우울함에 빠지던 남편이 6년차 프로 위로자답게 우울해할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조차 당기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여보, 피아노 좀 쳐봐. 여보가 피아노 치는 모습 보면 힘이 날 것 같아.” 이불에 누워 남편이 전자피아노를 두드리는 뒷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가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증거라도 되는 양 희망이 몰려왔다. 그렇게 그 날도 그를 버팀목으로 삼아 견딜 수 있었다.




셋째를 낳고 나서야 나는 부모님이 그토록 결혼을 반대하신 이유를 뼈저리게 이해하게 됐다. 결혼은 부부의 보금자리일 뿐 아니라 태어날 아이에게도 보금자리이며, 그 아이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 부모님이 우리 삼남매를 위해 명절날만 쉬고 소처럼 식당일을 하셨던 것처럼 아이를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잠시, 아니 아주 긴 시간 동안 멈춰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 시기가 이토록 길고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이 고통의 무게를 다 알았다면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철이 없었기에, 사랑에 미쳤기에 내릴 수 있었던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리가 무엇이 될지, 아니 무엇이 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를 통해 우리는 성장해나가며 혼자라면 벌써 포기했을 지도 모르는 꿈의 길을 걸어 나간다. 퇴사 무렵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Eva Cassidy의 'True Colors'라는 곡을 듣다가 남편 생각이 나서 그에게 가사와 링크를 보냈다.





You with the sad eyes don’t be discouraged
Oh I realize it’s hard to take courage
In a world full of people
You can lose sight of it all
And the darkness there inside you
makes you feel so small
But I see your true colors shining through
See your true colors that’s why I love you
So don’t be afraid to let them show
Your true colors
True colors are beautiful
like a rainbow






나만이 그의 색을 본다. 오늘도 그 색을 차분히 들여다본다. 그와 함께 보았던 노을처럼 다채로운 빛깔들. 난 그의 색들을 사랑한다. 흰머리가 좀 듬성듬성 올라오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가 처음 보고 찬탄했던 그 색을 그대로 발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색들을 보여주라고, 그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결혼의 방식이다.















Eva Cassidy - True Colors

https://www.youtube.com/watch?v=ZdYj89Mx6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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