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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1. 미니멀라이프




작년 가을 막내가 돌을 넘기니 육아가 좀 수월해졌고 몸도 많이 회복되어 살림을 좀 더 돌볼 여유가 생겼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첫째가 "엄마, 내일 손님 와?" 물을 정도로 청소와 담을 쌓고 살며 세 끼 먹고 설거지하는 걸 가까스로 해 내는 비루한 삶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동생에게 미니멀라이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말했더니 팩트로 시원한 찬물을 끼얹는다. "언니는 이미 애 숫자가 맥시멀이라 안 돼." 그 말에 일견 수긍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접지 않았던 이유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미니멀라이프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7살, 5살, 3살 프로난장판메이커들이 사는데 성별 또한 아들, 딸, 아들인지라 옷 정리가 어렵고 장난감도 다양하다. 쌍둥이유모차1대, 유모차1대, 큰 아이들 자전거2대, 킥보드 2대로 현관은 늘 번잡스럽다. 클래식을 전공한 남편의 전공서적과 시디의 양도 상당하다.







이런 현실을 혁신적으로 타개해보려고 미니멀라이프 카페에 가입했다. 내 예상대로 삼남매, 사남매네도 많았다. 그런데 그 집들이 애 없는 키우는 집보다 훨씬 더 깨끗했다. 장난감은 아이들이 잘 가지고 노는 것으로만 제한하고 옷도 철이 지나면 바로 정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때 4단 책장과 꽂혀있던 책들, 전동차, 1년 동안 입지 않았던 옷들을 많이 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비웠어도 집은 좀처럼 내 성에 차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니멀라이프 카페의 글들을 통해 배운 것들도 많았지만 내 안에 어느새 부러운 마음이 점점 더 크게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라온 사진들 중엔 우리 집처럼 오래된 집이 거의 없었다. 삼남매를 키운 집주인분이 전세를 놓고 가시면서 주방 싱크대와 도배를 해주셨지만 베란다 창틀과 욕실은 20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전 삼남매의 낙서와 우리 집 삼남매의 낙서가 섞여있는 방문을 볼 때마다, 다 깨어진 욕실 바닥 줄눈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짜증과 불만이 섞여 나왔다.



이전에는 40년 된 빌라에 살았었기에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땐 남편에게 좋은 집에 살게 되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었고, 무리해서 새 집에 산다는 것 자체를 어리석은 생각이라 여겼기에 친구들의 새 아파트에 가도 별로 부러워하지도 않았던 내가 말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저분해보이는 이유가 붙박이장이 없어서 물건을 수납할 곳이 없고 집 자체가 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바로 카페를 탈퇴해버렸다. 내 삶에 불평하게 되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없으니까.


 





그러다 올해 초 미니멀라이프 관련 책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탈퇴했던 그 카페의 글을 하나 읽게 되었다. 내가 추구하고 있는 작은 삶의 가치를 먼저 행하고 계신 분의 글은 그 자체로 나침반 같았다. 글이 참 좋아서 그 글을 쓴 분의 글을 더 읽고 싶어 다시 카페에 가입했다. 다 읽고 습관적으로 눈에 띄는 제목들을 눌러보다가 이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그런 글과 사진들을 보게 됐다. 미니멀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말하기보다 왠지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글들. 그걸 자랑이라고 느끼는 내가 찌질이 같고 내 안의 열등감 때문에 내 심성마저 삐뚤어진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글들.



그러던 중 아래에 카페 매니저님이 남긴 댓글이 눈에 띄어서 읽기 시작했다. '미니멀라이프 카페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우신 분들이나 자녀나 가족을 잃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시기 위해 카페를 찾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니멀리즘으로 인한 변화를 다룬 글이나 사진이 없는 우리 집 뷰, 여행이나 나들이 사진은 자제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을 읽는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던 소외감, 좌절감이 녹는 듯한 따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지금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라고, 격려 받고 배려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집을 돌볼 힘이 생겼다.



유튜브나 블로그에도 미니멀라이프 영상이나 사진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주로 미니멀라이프 카페에 와서 미니멀로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유튜브, 블로그의 집들이 완성에 다다른 모습이라면 미니멀카페에는 초보부터 고수까지 다양한 레벨이 있고, 나도 그 중간 어딘가에서 함께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버린 물건들이 쭉 나열된 사진을 보고 함께 희열을 느낀다. 맥시멀인 가족들과의 타협점을 찾았다는 글을 보며 관용을 깨닫고 '드디어 육아매트를 비웠다'는 글을 보며 기다림을 배운다.



그 뒤로 앞베란다, 뒷베란다를 헤집어 몇 보따리 짐을 나누고 팔고 버렸는데도 사실 남이 와서 보면 '이게 치운 거야?'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베란다라도 내 눈엔 예뻐 보여서 정리한 날엔 몇 번씩이나 할 일 없이 가서 문을 열어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방에 있던 쌓여있던 짐들이 창고로 좀 들어가서 그런지 조금 집이 가벼워보인다. 제대로 정리해보지도 않고 좁다고, 지저분하다고 불평했던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더욱 내 집을 풀꽃처럼 자세히 오래도록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또한 가꾸어가기로 다짐했다.







본격적으로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한 다른 이유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고 정리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 습관이 곧 아이의 사고 및 삶의 양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나부터 삶을 간소하게 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가 제법 크니 사달라는 장난감 사주시는 게 아버님의 기쁨이 되어서 그렇게 사주신 큰아들의 로봇이 한 박스 정도 된다. 로봇이 많으니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밑에 깔린 로봇들은 고장이 났고, 쉽게 싫증을 내서 한 달 전에 산 로봇도 찬밥 신세가 됐다.    




지금까지 가족들의 사랑과 갖고 싶은 걸 가진 만족감을 누렸다면 이제는 있는 것들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절제하는 법 그리고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관리하는 법 또한 배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장난감으로 그 태도를 연습하지만 이 마음이 훗날 자기의 집, 삶과 사람들을 대한 태도로 연결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혼자 삶을 꾸려가게 될 때 정리하는 법을 몰라서 헛된 것을 소유하고 관리하느라 삶의 에너지를 갉아 먹히는 법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아이들 점심을 먹이고 설거지를 한 뒤 잠시 눕고 싶지만 먼저 큰아들을 불러 함께 장난감을 정리한다. 아이는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로봇들을 가지런히 변신시키고 그러는 사이 나는 색종이로 접은 팽이, 미니카들을 버린다. 마지막으로 플라스틱 통 바닥의 먼지를 닦아낸 뒤 다시 장난감들을 넣고 아이에게 묻는다. "정리하니까 기분이 어때?" "깨끗하고 기분이 좋아." 정리의 맛을 느낀 아이의 표정 역시 정갈해 보인다.



사실 아이들과 어질러진 거실을 함께 정리하는 것보다 나 혼자 정리하는 것이 더 빠르다. '이 책은 저기에 꽂아라, 가방은 서랍에 가져다 두어라' 하나하나 일러주는 것도 일이고, 못 들은 한 척 하는 애들을 보는 것도 열불이 난다. 그러다 언성이 높아지면 '차라리 혼자 치우는 게 낫지' 싶다가도 지금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지만 이것이 아이들의 습관을 세우는 시간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몇 달이 지나니 아이들도 습관이 되서 내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아도 거실을 반짝반짝하게 치워놓는다.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어질러진 물건을 정돈하니 가장 좋아하는 장남감과 옷, 꼭 필요한 살림살이들이 남았다. 공간을 통해 연습해보니 자연스럽게 시간과 관계에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고 돌아보게 된다. 덕분에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과 의미 없는 만남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대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사람들을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더 많이 내어줄 수 있게 됐다. 버리고 줄였는데 더 풍성해지는 마법, 그것이 미니멀이 내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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