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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7. 육아가 예술이 될 때




어떤 일이든지 초보 수준에서는 주어진 매뉴얼을 따라 배우고 일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숙련된 뒤에는 지금까지 배운 기술들에 나만의 상상력을 덧붙여서 새로운 방식을 창조해낼 수 있게 된다. 육아 나이 여섯 살인 나도 이제야 가끔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세 아이가 놀다보면 싸우다가 혹은 너무 신난 나머지 서로 엄청나게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두개골이 울리고 짜증이 나서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조용히 해!’라고 샤우팅을 하려다가 머리를 굴린다.   




먼저 소리 지르며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가르쳐야 할 내용을 반복해서 일러줘야 한다고 육아서를 통해 배우고 적용해왔지만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사람은 무언가를 배울 때 재밌으면 더 잘 배운다는 것을 떠올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소리 지르면 안 된다는 걸 알려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 사자를 빌려왔다.   




“우리 아기 뱃속에 사자가 들었나? 어떻게 이렇게 큰 소리가 나지?” 하며 성난 첫째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댄다. 둘째도 “엄마, 내 배에도 사자 들었어.”하면서 배를 내민다. 셋째도 뭔지 모르지만 다들 하니까 배를 불쑥 내밀며 깔깔댄다.    




잠시 으르렁대며 함께 놀다가 “아파트에선 너무 크게 소리 지르고 놀면 안 돼.”하고 가르쳐 주고 이번엔 개미처럼 다 같이 소곤소곤 놀이를 하자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뱃속에 또 사자가 들어왔네. 그런데 그 사자한테 아파트에서는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말해줘.”하면 아이들은 소리 지르기를 멈췄다. 







그 순간 자주 읽는 글쓰기 책인 브렌다 유랜드의 ‘글을 쓰고 싶다면’의 한 구절이 번뜩 떠올랐다.



 ‘창조력이라는 말로 내가 의미하는 내용은 지식인들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이상임을 기억하라. 즉, 자신의 상상력과 노력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더욱 훌륭한 투사로 만들려는 사람은 창조력을 갖고 있다.   


’만약 한 여성이 의상 잡지들을 뒤적이다가 내면에서 기쁨의 에너지가 분출하는 것을 느끼고 “이렇게 생긴 코트를 입고 이마에는 곱슬머리 한 가닥을 늘어뜨려 봐야겠군!”하면서 그 옷을 입고 그런 머리모양을 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 보고 실제로 그렇게 해보는 동안 행복한 에너지가 샘솟는 것을 느낀다면, 그녀 역시 창조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케이크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요리사도 창조력을 갖고 있다.’   






느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예술의 핵심을 브랜다 유랜드는 ‘창조력’이라고 표현했다. 흔히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문학, 그림, 음악뿐 만 아니라 느낌과 상상력과 지성을 발휘해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모든 활동(31쪽), 예를 들어 옷 만들기, 요리 등을 그녀는 창조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육아에 있어서 나만의 방식을 찾고자 상상력을 발휘하고, 지금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거듭할 때, 브렌다 유랜드의 정의에 따르면 나의 육아는 창조적인 일이며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육아를 보람 있는 돌봄노동 그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내게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이었다.    




Photo by  tabitha turner  on  Unsplash




또한 그녀는 “정말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모습인지를 너에게 꼭 보여줘야겠어.”라고 쓴 반 고흐의 편지를 읽고서 예술이 무엇인지, 창조적 충동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이며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다. 또한 그것은 직접적으로, 단순하게, 열정적으로, 진실하게 사물의 아름다움을 묘사함으로써 타인에게 보여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는 처음으로 육아와 예술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부모가 살아오면서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단순하게, 열정적으로, 진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을 좋아하는 부모는 아이와 산책을 하고, 책을 좋아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부모는 아이와 함께 이웃을 돕는다.       







하지만 이처럼 느낀 것을 표현한다고 해서 다 예술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진정한 예술에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과 이를 통해 갈고 닦은 정교한 기술이 동반된다. 예를 들어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도 처음에는 그저 체육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기술들을 익힌 뒤 그녀만의 연기가 더해지면 올림픽에 출전한 수많은 선수들 중에 그녀 혼자 독보적인 경지의 ‘예술’을 보여준다.   




피겨스케이팅은 몸짓으로, 문학은 글로, 그림은 선과 색으로 표현한다면 ‘육아라는 예술’은 눈빛과 표정, 말과 행동이 그 도구이며 표현방식이다. 말 한 마디, 따스한 눈빛이 쌓여서 마침내 아이의 몸과 마음은 부모가 만들어낸 작품이 된다.   




나도 사람인지라 성난 표정, 뾰족한 말이 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작가가 이전 작품보다 나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듯, 같은 뜻이지만 더욱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서 쓰듯이 아이에게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말을 가다듬으려 애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척 딱딱해 보인다는 무표정한 얼굴도 아이들이 불렀을 때는 눈웃음을 지으며 이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면 나의 도화지인 둘째의 얼굴에는 잇몸까지 드러낸 더 환한 웃음이 생긴다.       







얼마 전 저녁으로 콩나물국을 끓여서 아이들을 밥상으로 불렀더니 “고기 없어? 콩나물국 싫은데.”라고 해서 속으로 ‘콩나물 다듬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냥 주는 대로 감사하며 먹어! 아프리카 친구들은 이것도 못 먹거든’ 하려다가 꾹 참았다. 핑크퐁 동요 ‘채소’를 부르며 딱 한 번만 먹어보자고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징징거렸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깨작대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먼저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엄마가 애기 때는 너네처럼 콩나물국을 안 좋아했어. 근데 외삼촌은 콩나물국을 엄청 좋아했어. 삼촌이 엄마보다 늦게 태어났는데 콩나물 먹고 막 크기 시작하더니 엄마랑 이모보다 훨씬 크잖아. 그치?” 하니까 애들은 외삼촌만큼 크겠다며 콩나물국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푸념에 대해 내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수고를 몰라주는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억지로 먹으라고 했대도 아이들은 콩나물국을 마지못해 먹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콩나물국을 오늘 하루만 먹이려는 게 아니었고, 앞으로 쭉 좋아하는 음식으로 만들어주고 싶었고 편식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육아의 기술을 벼려야 한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진정으로 예술적인 것은 없다.”라고 썼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김춘수 시인이 노래한 ‘꽃’이 된 기분이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나의 이름이 호명된 기분. 사람들은 육아를 ‘집에서 애 보기’라고 명명했지만, 반 고흐는 ‘아이를 사랑하는 일’인 육아를 예술이라고 알아봐준 듯 했다. 그가 내 육아를 예술이라고 해주니 예술가 같은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육아를 대하게 된다. 아이를 평생에 걸쳐 완성할 가장 소중한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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