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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4. 책육아 말고 도서관 육아




육아와 관련해서 감사할 거리가 정말 많지만 그 중 하나가 걸어서 5 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를 낳은 후에야 운전면허를 땄기에 도서관이 멀리 있었다면 아이 둘과 대중교통을 타고 도서관에 자주 오가기는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



도서관은 일차적으로 책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이지만 우리는 계절별로 다른 이유로 도서관에 간다. 봄에는 도서관 둘레에 심어진 벚꽃 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여름에는 우리 집 Goldstar 에어컨으로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서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영유아실로 피서를 간다. 가을에는 도서관 마당 나무들 아래에서 낙엽비를 맞고, 겨울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밖에서 놀기 힘드니 공기청정기가 있는 도서관에 더 자주 간다.  








첫째도 다섯 살 때까지 가정보육을 했고, 지금은 다섯 살 둘째, 세 살 셋째를 가정보육 중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은 우리는 주로 사람이 없는 오전에 도서관에 간다. 덕분에 하원 시간 이후의 붐비는 시간보다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날씨가 궂어서 달리 갈 곳이 없는 날에는 하루에 2번 도서관을 가기도 한다.



둘째가 가만히 누워있을 때, 적어도 천천히 기어 다닐 때까지만 해도 영유아실에 가서 첫째에게 책을 편히 읽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니 첫째 책을 읽어주고 있으면 둘째가 늘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가만히 책을 읽고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둘째는 화장실에 가서 화장지를 다 풀어 변기에 넣기도 하고, 책장의 책을 우르르 다 빼놓기도 하고, 사서 선생님도 안 계신데 선생님 자리에 가서 사탕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둘째의 말썽 종류는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어 도서관에서는 정말 책 한 권 읽기가 힘들었다. 큰 애는 책 좀 읽어달라고 징징대고,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둘째를 잡으러 다니느라 지친 어느 날은 '이제 도서관도 못 오겠구나' 싶어서 정말 눈물이 날 뻔한 날도 있었다. 그래서 아예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건 시원하게 포기해 버렸고 큰 애가 읽고 싶다는 책을 골라오면 그 책들은 대출하고, 도서관에서는 둘째의 저지레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셋째가 태어난 뒤에는 세 명이 따로 돌아다니면 책장들 때문에 찾기도 힘들어서 영유아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예 놀이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방에는 영아용 작은 책들과 부록으로 딸린 사운드북, 인형들이 모두 모여 있어서 셋째가 혼자 잘 논다. 그동안 첫째, 둘째가 혼자서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오면 같이 읽는다.
     



도서관에 가면 아이들을 예뻐하시는 영유아실 사서 선생님들이 이름을 부르며 맞아주신다. 아이들은 인사도 생략하고 “선생님, 그런데요, 지온이 오빠가 달팽이 잡아줬어요.”라며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내가 애 셋 옷과 신발을 벗기느라 분투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나오셔서 옷 정리를 도와주시기도 하고 재미있는 신간이 나오면 큰 아이에게 읽혀보라며 추천도 해주신다. 감사한 마음에 애들 돌마다 돌떡도 항상 가져다드린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에 갔을 때 아이들이 시끄럽기 때문에 폐를 끼칠 까봐 신경이 쓰일 때가 많은데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장소가 있다는 게, 그리고 도서관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게 참 감사하다.




내 책 고르러 종합자료실 갔다가 시끄러워서 꺼내준 낚시책에 빠진 아이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 전집을 파는 영업사원이 왔다 가면 꼭 사야한다고 구입신청서 내는 날 아침에 드러누워 울곤 했다. 중학교 때는 문학소설에 빠져서 연달아 세네 권을 샀는데 부모님이 형편이 어렵다 하셔서 그 뒤로는 아쉽게도 책을 사서 읽은 적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시간에 감질나게 일부분만 읽은 작품들을 따로 찾아 읽곤 했다. 




대학교 때도 책은 ‘소유’한 게 아니라 언제나 빌려서 보는 것이기에 읽을 때는 최대한 집중해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겠다는 태도로 읽었다. 지금도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글귀가 나오면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가 컴퓨터로 옮겨 적으면서 한 번 더 마음에 새긴다. 책을 많이 가진 환경에서 자라진 못했지만, 나는 언제나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 했다.



예나 지금이나 독서는 중요하게 여겨지고 요즘엔 수학도, 영어도, 심지어 미술도 책을 통해 배워야 한다며 온갖 전집이 쏟아져 나온다. 부모가 아이에게 독서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굳이 가정경제에 무리가 갈 정도로 전집을 사들여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학창 시절 내내 식당일로 바쁘셨고 책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는 늘 신문을 읽으셨고, 엄마는 수필책을 종종 읽으시고 신문에 나오는 좋은 시를 따로 잘라 모아두셨다. 그렇게 읽기와 문학은 나에게 대물림되었다.
 







첫 아이를 키우며 다른 친구들이 홈쇼핑에서 장난감과 책장이 딸린 전집을 주문했다고 할 때, 물려받은 오래된 전집 한 질로 충분할까 남편에게 물었다. 클래식음악을 전공하는 남편은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가 우리보다 더 많은 책과 시디가 있어서 그런 예술적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는 현답을 내놓았다. (근데 우리 집에서 책 제일 많이 사는 사람은 바로 남편, 너야.)
  



그리고 정말로 그 전집 한 질은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았다. 이제는 둘째, 셋째가 즐겨 읽고 돈 받고 팔라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라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그 책들은 단순히 책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읽어온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에는 정든 책들이, 도서관에는 처음 만난 친구 같은 새 책들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은 책과 함께 클 수 있었다.




집에 책이 적은 건 괜찮지만, 도서관이 없었다면 나의 육아, 더군다나 가정육아의 길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도서관은 내 아이들이 처음 만난 세상이며 내게는 고마운 육아의 동반자다.


 




도서관 앞 마당에서 가을 낙엽 놀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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