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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6. 내가 선택한 육아, 가정육아




첫째가 14개월 때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양가 부모님과 지인들은 이제 첫째는 어린이집 보낼 거냐고 물었지만 나와 남편은 두 번의 유산 후에 얻은 첫 아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인지 보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두 돌까지는 자기 전과 자고 일어난 후의 잠투정이 엄청 심했는데 어린이집에서 이랬다가는 선생님이 참다 참다 애를 팼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적어도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을 하게 되면 보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아줌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가 아이가 낯을 가리고 쭈뼛거리니 왜 어린이집을 안 보내냐고, 사회성이 없다며 핀잔을 주셨다.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나로서는 생판 모르는 타인의 한마디라도 신경이 좀 쓰이긴 했다. 하지만 동네 아줌마의 말보다는 당연히 사회성은 만3세부터 발달하며 오히려 36개월 이전에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잘 되어있을수록 사회성 발달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육아전문가의 말이 맞기에 더 이상 마음 쓰지 않았다. 그리고 만36개월 이전에는 어린이집에 보내도 함께 어울려 놀기보다는 각자 노는 평행놀이(Parallel Play)시기이기 때문에 굳이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23개월 첫째와 갓난이를 돌보는 아이둘 가정육아가 시작되었다. 첫째가 잠을 너무 안자서 둘째도 그럴 까봐 너무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9개월 무렵 서기 전까지는 선잠 들어 아기 침대에 눕히면 잘 잤다. 다만 둘째는 아토피와 계란, 견과류,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어서 이유식에 더 공을 들였다. 첫째 돌까지는 육아가 처음이라 너무 어려워서 우울했다면, 둘째 돌까지는 한 번 해본 일이긴 하지만 그 일이 2배가 되서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첫째가 4살이 되서 어린이집에 가면 수월해지겠지 생각하면서 버텼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어린이집 원아모집기간이 되어 집 주변 어린이집 중에서 평이 괜찮은 곳들을 아이와 함께 돌아보았다. 몇 군데 돌아보았지만 내 맘에 쏙 드는 곳은 없었다. 나는 바깥놀이를 충분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엄마들은 바깥놀이를 조금 하거나 아예 원치 않는 엄마들도 있어서 자주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모래놀이 역시 옷 더러워진다고 싫어하는 엄마들이 많아서 흙을 밟을 수 있는 어린이집은 정말 단 한군데도 없었다. 어떤 곳은 원장선생님이 애 얼굴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네들이 올해 시작한 특별인성교육프로그램과 원비에 대해서만 설명했다. 또 어떤 곳은 놀이보다는 학부모님들 요구에 맞춰서 시 암송이나 학습지도 많이 한다고 자랑했다.




내 마음이 가정보육에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안할 핑계를 찾다보니 어린이집들의 단점만 보인 걸지도 모르겠다. 워킹맘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내야 겠지만 둘째가 2살이라 어차피 데리고 있을 거니 첫째도 더 데리고 있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물어도 아이가 절대 안 간다고 하니 좀 기다려주기로 했다.




4살, 2살 두 아이를 키우며 운전면허가 없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서 문화센터는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 대신 집 앞 도서관과 놀이터로 매일 나갔다. 4살이 되니 첫째는 한 가지 놀이에 푹 빠질 때가 많았다. 맥포머스를 해도 책 보며 한참 만들고, 시댁 마당에서 저수지 만든다며 몇 시간씩 삽질을 하고 물을 퍼다 날랐다. 선생님이 하자고 한 놀이가 아니라 스스로 재밌는 놀이를 찾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그 놀이 가운데 몰입하면서 집중력이 발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거의 집에 있지만 심심하다는 말을 별로 안 하는 것도 스스로 놀이를 찾고 혼자 몰입, 집중할 기회를 많이 줄 수 있었던 가정육아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둘째가 3살이 되니 말귀를 알아들어서 육아가 좀 편해졌다. 함께 이야기하며, 웃는 소소한 재미가 커졌다. 이제 운전면허 좀 따고 둘 데리고 멀리 놀러가 보려고 하던 차에 셋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좀 당황했지만, 삼남매 맏딸인 나는 올 것이 왔다는 듯 담담했다. 처음엔 삼남매의 장점만 생각했고, 아들인 것을 알았을 때는 아들이 둘이니 나중에 가구 옮길 때 편하고, 남편이 없어도 맘 편히 잘 수 있을 거라고 머릿속에서 장점을 쥐어짜냈다.





내 사랑 셋째




임신 초기에 마침 독일에서 친하게 지냈던 우타 아줌마가 한국을 방문하셨다. 내가 2번이나 유산했을 때 자기 역시 3번이나 유산했었다고 위로해주셨는데, 이제 내가 세 번째 아이를 품고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유학생이었던 우리를 비롯해서 전 세계 남녀노소, 언어가 통하든 안 통하든 다 품으시던 아줌마를 참 좋아했는데, 아이를 낳아 기르고 다시 아줌마를 만나보니 아줌마의 그 넓은 품은 첫째 딸과 네 아들을 길러낸 엄마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아이들을 다 기른 뒤 아줌마는 트라우마 전문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계신다.




아이들을 가정보육하고 있다고 했더니, 아줌마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동독이 아직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기독교인 아주머니는 공산주의 사상을 심어주기 싫어서 가정보육을 하셨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편이었다고 너도 아주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칭찬해주셨다. 물론 아줌마네는 애가 다섯이니 집이 이미 어린이집이긴 했을 것이다. 다만 넷째부터는 식기세척기와 건조기의 도움이 컸다고 하셨다.




우타 아줌마의 응원에 힘입어 셋째를 임신한 동안에도 가정육아를 이어갔다. 오히려 셋째 태어나면 한동안 집에 있을 것 같아 더 열심히 돌아다녔다. 애 둘 데리고 옆 도시로 기차여행을 가기도 하고, 운전면허도 기능시험까지는 합격했다.








11월에 셋째가 태어나서 백일이 되는 2월까지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3월이 되었고 드디어 첫째는 병설유치원 6세반에 입학했다. 입학식에서도 안 다닌다고 맨 뒷줄에 고개 푹 숙이고 앉아있더니 다음날 의외로 순순히 떨어지고, 다녀와서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홀로서기가 반갑고 기특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함께 있던 아이였는데 내가 모르는 아이의 시간, 생각이 생긴다는 게 왠지 서운하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이제부터 아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독립해서 나로부터 멀어져만 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마음이 든 듯 했다.




어린이집 첫 상담에는 남편이 갔다. 선생님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굉장히 안정적이고, 친구들과도 아주 잘 어울리며, 지적으로도 아주 뛰어나다고 따로 교육을 받은 게 있는지 물으셨다. 그 말을 전해 듣고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책 1권 못 읽어주는 날이 많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엄마에게나 다 해 주시는 칭찬인 줄은 알지만,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우려한 대로 집에서 데리고 있다가 애 바보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증명돼서 기뻤다.




하지만 유치원에 다닌지 세 달 만에 7월부터 9월까지 초등학교 석면제거공사를 해야 해서 또 아이 셋 가정육아를 하게 됐다. 그리고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서 2월 말부터 세 달째 아이 셋 가정육아중이다. 이쯤 되니 가정보육이 운명인가 싶다. 지난달에는 드디어 첫째가 '엄마 힘드니 요리사랑 설거지사를 사자'고 해서 우선 식기세척기를 들이니 훨 낫다.








내가 하고 있는 가정육아 이야기를 적다보니 가정육아가 집과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는 틀에 갇힌 육아로 보일지 모르지만, 가정보육을 하는 엄마들의 인터넷카페에서 보면 다양한 모습의 가정육아가 존재한다. 선생님처럼 누리 과정에 맞춰 한 달 계획을 짜서 가르치는 분, 책도 체계적으로 읽히고 영어도 잘 가르치는 분, 미술을 전공해서 아이에게 다양한 미술놀이를 해주시는 분, 아이들과 해외 한달살이에 도전하시는 분 등 엄마의 전공과 가정 사정 또 아이의 특성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의 가정육아가 존재한다. 카페에서는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같은 지역에서 가정보육 중인 아이 친구도 찾고, 엄마들의 시름도 나눈다.




다른 집의 가정육아를 보면 내 가정육아가 너무나도 부족해 보인다. 아이 셋 터울이 적다보니 집에 데리고 있는다는 가정육아의 큰 틀만 지키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하는 건 건강한 먹거리로 만든 단순한 집밥과 매일 나가노는 것, 둘 뿐이다. 한글, 영어, 수학 다 잘 해주고 싶지만 하루에 하나라도 하면 감지덕지다. 더 잘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육아, 그게 최고의 육아가 아닐까 싶다.

 

  

 

첫째, 둘째 때는 누군가 가정육아에 대해 염려하면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로 변명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아파트 아줌마들이 왜 애를 아직도 데리고 있냐고 물어도 “제가 더 데리고 있고 싶어서요.”하며 호호호 웃어넘긴다. 그 외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할까. 그거만 해도 충분한 이유이지 싶다.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워킹맘의 일상과 고충을 다룬 책과 드라마는 흔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워킹맘의 고단함에 대해 잘 알고 공감한다. 하지만 가정육아 중인 엄마들은 워킹맘 못 지 않게 집에서 집안일, 육아, 또 자기계발을 해도 해도 돈을 안 번다는 이유로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 받을 때가 있다. 집에서 애 보는데 뭐가 힘드냐는 듯 한 눈총이 쏟아진다. 하지만 서로의 삶의 모습이 다를 뿐, 부모로서의 삶과 고민의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빠와 엄마가 가족 전체를 위해 선택했다면 그게 기관보육이든 가정육아든 다 맞다. 워킹맘에게는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한 선택이 맞고, 아이와 함께 있기로 한 가정육아맘의 선택도 틀리지 않았다. 그 역시 아주 잘한 선택이다.




가정육아를 하는 이유가 남보다 더 나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정육아가 최고고, 정답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가정육아가 '별난 육아, 못난 육아, 잘못된 육아'로 여겨지는 게 좀 속상하다. 가정육아도 어린이집 보육만큼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길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오지랖 넓고 수다스런 나는 오히려 유난떨며 애 키운다는 주위의 핀잔에 상처받은 가정육아맘들, 나가서 돈 안 번다고 시댁이나 친정에서 눈치 보는 엄마들, 다시는 좋아하던 공부나 일을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분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응원하고 싶었다. “이미 너무 잘하고 있어요. 더 애쓰지 않아도 되요. 아이도 당신도 잘 크고 있어요. 애 잘 키운 당신은 나중에 뭘 해도 잘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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