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중에서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일은 바로 설거지다. 청소는 솔직히 일주일을 안 해도 견딜 만하고, 빨래도 정 바쁠 때는 2, 3일에 한 번 세탁기를 돌린다. 하지만 하루 3번 식사에, 식사 같은 간식을 2번 더 먹는 오식이 삼남매를 키우는 엄마로서 설거지는 정말 피할 길이 없다. 그나마 요리는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즐거움과 두뇌를 사용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기쁨이라도 있는데 설거지는 그럴 여지가 없는 '순전한 노동'이다.
요리하느라 1차, 먹이느라 2차로 진을 뺐는데 설거지까지 바로 이어서 하면 정말 힘들어서 자꾸 미루게 된다. 설거지를 미루지 않기로 자주 다짐하지만 삼일도 못 가서 그만 둔다. 아침, 점심 먹은 설거지를 저녁 먹기 전에 몰아서 하거나, 저녁 먹은 설거지를 묵혔다 아침 먹고 할 때도 많다.
셋째를 낳고서는 워낙 시간이 없으니 설거지할 때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유튜브로 간단한 영어문장을 반복하는 영상이나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듣기도 했다. 확실히 그냥 설거지만 할 때보다 덜 지루했다. 하지만 애 셋이 등 뒤에서 계속 사고를 치고 싸워대니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서 2월 말부터 유치원에 가던 첫째까지 집에 있게 되니 그 작은 입 하나가 뭐라고 설거지가 또 늘었다. 요리랑 설거지 때문에 힘들다고 했더니 속 깊은 첫째는 “엄마, 그럼 우리 요리사와 설거지사를 사요.”라며 내 마음의 은근한 구매욕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다가 싱크대에서 새끼를 치는 듯 한 설거지에 치여서 3월 말에 식기세척기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들 나 같은 마음으로 식기세척기를 주문했는지 주문은 더욱 밀린 상태고, 가격도 2만원이나 올라서 눈물을 머금고 주문했다. 요즘에는 큰 조리도구들도 다 한꺼번에 설거지 할 수 있는 12인용 식기세척기가 유행인데 우리 집은 전세집이라 비용이 많이 드는 빌트인을 하기도 어렵고, 허리를 구부려서 그릇을 넣고 빼기도 꺼려져서 6인용 식기세척기를 주문했다.
식기세척기 사기를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설거지 시간이 최소 1시간 걸린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빠르면 15분 정도면 설거지를 할 수 있는데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면 훨씬 오래 걸리니 왠지 비효율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에 30분이라도 일을 덜 수 있다면 한 달에 900분, 15시간은 생기는 거라는 계산이 서니 살만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손으로 설거지할 때보다 물도 덜 들어간다 하고, 전기세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하니 속는 셈 치고 한 번 써보기로 했다.
하여튼 식기세척기가 오기까지 나는 3주나 더 설거지를 해야 했다.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하기 싫은 마음이 밀려오다가도 식기세척기가 곧 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위안이 됐다. 이 고통의 끝이 정해져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딜만해지고, 고통이 덜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에 왠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난데없이 아이들을 낳던 날의 진통이 떠올랐다.
첫째를 낳던 날에는 아침 9시에 싸르르한 느낌이 배를 훑고 지나갔다. 통증은 점점 강해져 매달 너무나도 고통스럽던 생리통을 견뎠던 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강도와 종류의 통증도 고통스럽지만 도대체 이 아픔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게 더 공포스러웠다. 그 고통을 밤 10시까지 겪고 첫째가 태어났다. 보통 아기들은 나오기 쉽도록 몸을 돌리면서 땅 쪽을 보고 태어나는데 첫째는 약간 하늘을 보고 태어났다. 그래서 허리 쪽의 통증이 심했던 거라고 조산사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셨다.
둘째를 낳던 날은 새벽1시까지 남편과 밤산책을 하고 와서 남편은 잠이 들고 얕은 진통으로 인해 나는 밤을 샜다. 아침 9시에는 미뤄두었던 첫째의 건강검진이 있어서 소아과에 다녀왔다가 진통이 10분 간격으로 줄어들어서 11시쯤 헐레벌떡 병원으로 향했다. 그 때부터 진통이 몰려오는데 이번엔 다행히 허리통증이 아니어서 견딜만했다. 그리고 적어도 첫 번째 진통처럼 길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 더욱 견딜만했다. 진통은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기 위해서 엄마의 골반뼈가 벌어지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런 '고통의 의미'를 아는 것도 고통을 견디는데 도움이 되지만, '고통의 끝'이 가까이 왔다는 걸 아는 것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육아스트레스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고된 날은 꼭 육아가 아주 긴 터널처럼 느껴진다. 저 끝에 빛이 보이기는 하는데 나의 일상은 너무나도 어두컴컴하다. 원체 어두워서 도통 그 끝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애만 키워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막막해져 숨이 턱 막혀온다. 하지만 그것은 그 날의 기분이고 느낌일 뿐 사실이 아니다. 육아에도 끝은 있다.
육아스트레스는 크게 3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물리적으로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수고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아이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어야 하고 이는 지금까지 해보지도 않았고, 배워보지도 못한 낯선 노동이다. 두 번째로 그걸 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멈춰야한다는 게 또 스트레스다. 세 번째는 아이가 좀 커서 제 고집이 생긴 뒤 나와 의견이 달라서 생기는 스트레스다. 예를 들어 아이는 1시간 만화를 봤어도 더 보고 싶고, 장난감이 많아도 더 사고 싶지만 엄마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육아스트레스는 부모의 육아관에 따라 아이가 커갈수록 더할 수도 있다. 자녀의 행동이나 원하는 진로가 부모의 기대에서 엇나갈 때 부모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이 스트레스는 더욱 커진다. 하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스트레스는 아이가 커갈수록 줄어들고, 어른이 되면 끝이 난다. 모든 아이들은 때가 되면 혼자 밥을 먹고 이를 닦고 혼자 잠을 잔다. 아이가 스스로 시간을 채우게 되면 엄마의 시간은 서서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7살, 5살 첫째와 둘째만 해도 이제 나가자고 하면 혼자 옷을 골라 입고, 심지어 셋째 양말과 신발까지 신긴다. 얼마 전에는 내가 바빠서 재워줄 수 없다 하니 처음으로 둘이 손잡고 밤잠에 들어서 나를 감격케 했다.
식기세척기가 올 때까지는 설거지를 해야 하듯이,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 나는 하루도 육아를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고맙게도, 아쉽게도 육아에는 끝이 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와서 맡아준다 해도 조금도 아쉬울 일이 없겠지만은, 육아는 아이들이 다 큰 다음에 얼마나 아쉬울까. 당장 오늘 하루만 돌아보아도 애들이 잠들면 첫째가 읽어달라는 책 다 읽어주지 못해서 둘째가 업어달라고 했을 때 다 업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육아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그 비슷한 경험은 늘 해왔다. 밤에 어두운 방에 자러 들어가면 누워있는 아이가 너무 길어서 생경스럽고, 설거지 다 하고 돌아서면 책을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놀란다. 하루 종일 같이 있던 아이인데도 갑자기 커버린 듯 한 느낌이 든다. 육아의 끝에서 어른이 된 내 아이를 보아도 그러지 싶다.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특하고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 그리고 마주 보며 웃는 아이와 나.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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