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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4. 내가 선택한 직업, 반(半)주부




전업주부란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를 말한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나의 공식적인 직업은 전업주부가 맞지만, 안타깝게도 집안일을 꾸리는 수준은 전문적이지 못하다. 살림10년차인데 아직도 냉장고에서 무른 야채가 나오고, 욕실에는 손빨래거리가 쌓인다. 계절마다 하는 옷정리도 잘 안 되고, 냉장고 분리청소도 잘 안 한다. 물론 미취학 아동 세 명을 키우고 있다는 게 훌륭한 변명거리이긴 하다.   




전업주부의 정의에 나오는 집안일에 육아도 포함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집안일과 육아는 엄연히 다른 일이다. 집안일은 정리, 청소,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 등을 말하며, 육아에는 수유, 재우기, 씻기기, 놀아주기가 포함된다. 아이들 셋이 잘 노는 편이지만, 싸움이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말려야 하고, 위험한 짓을 하면 혼내야 하고, 중간 중간 아이들이 엄마랑 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애들 데리고는 집안일에 좀체 속도가 붙지 않는다.  




Photo by Brooke Lark on Unsplash

 



우리 집은 내가 육아와 집안일을 전담하고, 저녁에 남편이 있는 날은 남편이 육아를 담당한다. 첫째 때는 이 사실에 화가 났었다. 똑같이 부모가 됐는데 남편만 계속 공부를 하고, 나는 살림을 하고 육아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물론 남편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육아와 집안일을 맡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고, 둘이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남편은 자기가 분유 먹이고, 이유식하고 살림을 할 테니 내가 나가서 일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 심지어 자기는 그게 더 좋다고 했다. 나랑 애를 두고 나갈 때마다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는 그의 부성애에 비하면 나의 모성애는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었고, 날마다 자라나는 아이의 몸과 마음을 지켜보는 일이 좋았다. 공부도 일도 좋지만, 육아가 아주 조금 더 좋았다. 취직 제의가 있을 때마다 남편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어차피 나는 언제나 임신 혹은 돌 전 아기를 수유 중이었고 기관에 보내기에 아이들이 너무 어렸으므로 결론은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남편에겐 황당하지만 확실한 사실로 불합격사유를 통보했다. “당신은 뱃속에 아기집이 없고, 모유가 나오는 가슴이 없어서 안 돼.”   




둘째를 낳고 아이 둘을 집에서 키우면서는 내 속에 박혀있던 집안일과 육아에 대한 세상의 고정관념을 부셔버렸다. 집안일과 육아는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돈을 버는 일보다 못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 말은 진리가 아니다. 우리 가정이 존재하려면 누군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집안일과 육아를 맡아야 한다. 그 중에서 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선택해서 맡았으며, 남편은 경제활동을 맡았다. 그는 돈을 벌고, 나는 안 번다는 차이점 그리고 그는 밖에서 일하고 나는 집에서 일한다는 차이점, 이 두 가지 차이점 말고는 일의 중요도나 가치의 차이는 없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가짜 피해의식으로 인한 쓸데없는 분노는 많이 줄어들었다.      




셋째를 임신하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아이들이 기관에 가면 본격적으로 나의 꿈인 작가가 될 준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임신을 했으니 당최 육아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제는 육아하면서 글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다 들어줄 수 없는 나의 푸념, 아이가 알아듣지 못할 내 고민들 그리고 관심사도 다르고 일상도 달라져버린 친구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생각과 감정들을 글에 담았다.   




셋째 돌까지는 아무래도 나보다는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돌이 지난 후 나는 반(半)주부로 살기로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시간과 마음의 딱 절반만 집안일에 사용한다. 애가 셋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집안일의 양이 꽤 많다.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집안일에서 손을 놓은 게 확연히 티가 난다. 또한 마음을 쏟지 않으면 더 하기 싫어지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쉽게 짜증이 난다. 이 일은 우리 가정을 위해 내가 맡은 일이니 즐겁게,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지금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물김치를 담그는 등 집안일을 좀 더 잘하기 위한 노력도 조금씩 하고 있다.   




내 시간과 마음의 나머지 반은 육아와 나의 꿈을 위해 쓴다. 어느 때는 반반, 어느 때는 육아에 40, 나 자신에게 10 이런 식으로 비중은 그 날 그 날 다르다. 아이 상태가 좋고, 내 상태가 좋지 않다면 나에게 쏟는 비중이 늘어난다. 밥만 겨우 주고, 설거지 빨래 청소 다 안 하고 애들도 저희들끼리 놀라고 하고 책만 읽는다. 반대로 둘째가 계속 셋째를 질투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등 아이에게 마음을 써야하는 시기에는 내 시간은 조금 내려놓고 아이들을 더 돌본다. 집안일, 육아, 자기계발이 세 가지의 균형이 맞을 때 나도 아이도 행복하다.       








일과 육아의 갈림길에 설 때 나 역시 다음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를까봐 두려웠다. 나중에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해 우울에 빠진 내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라 우울함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엄습할 때 육아를 마치고 자기 일을 계속 해나갔던 엄마들, 선배 반주부들의 책을 펼쳐 읽었다.   




첫 번째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따라가고 싶은 분은 작가 박완서 선생님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여자네 집' 등 수많은 소설을 남기신 그분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나이 마흔에 첫 장편소설'나목'으로 등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냥 나이 마흔이 아니라, 그 분은 딸 넷에 막내아들 하나를 둔 엄마였다. 막내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마흔 살에 소설가의 꿈에 도전했다. 얼른 무언가 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 때 선생님이 등단하신 마흔이 아직 5년도 넘게 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또한 선생님의 책 앞에서 애가 셋이라 글 쓸 시간이 없다는 변명도 갈 길을 잃는다.   




선생님의 소설엔 유년시절, 한국전쟁 이야기도 많지만 중산층 가정주부의 살림과 육아를 엿볼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작가라는 꿈의 좋은 바탕이 되어주었음을 확인한다. 등단했을 때의 당선소감에서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쩌면 서투른 글을 쓰기 위해 서투른 아내, 서투른 엄마가 되려는 거나 아닐까? 그럴 수는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계속 좋은 주부이고 싶다. 나는 이 두 가지에 악착같은 집착을 느낀다.” 지나친 욕심, 혹은 불가능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주부이고 싶다.      




두 번째 나의 롤모델은 여성학자 박혜란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읽다보니 가수 이적 씨의 어머니셨다. 이분은 첫째 출산 전에는 기자로 활동하시다가 세 아들이 어렸을 때는 일을 쉬셨다. 그 동안에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세 아이 똥기저귀와 어머니 대변기저귀를 다 빠셨다고 하니 그 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고 시어머님이 살림을 맡아주셔서 여성학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아무리 읽어도 머리에 남질 않아서 소리를 지르셨다고도 한다. 또한 동네 아이들이 다른 집에 가면 어지른다고 혼나는데, 이 집은 늘 지저분하고 혼내지 않아서 좋다고 아지트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에 아들이 두꺼운 긴팔을 입고 들어오기에 왜 그런 걸 입고 다니냐고 했더니 구멍이 뻥 뚫린 겨드랑이를 보여주며 이래서 덥지 않다고 했단다. 그만큼 집에도, 아이들에게도 살뜰하게 신경써줄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아들들은 셋 다 서울대 나오고 제 가정을 꾸려 잘 살고 박사님 역시 여성학 박사이자 육아멘토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시다.   







아이는 부모가 말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단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육아하느라 하고 싶은 일은 해보지도 못했다는 푸념 섞인 이야기는 수없이 널렸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열정적으로 육아를 하고 이를 경험삼아 성장한 엄마들, 엄마였기에 혼자였을 때보다 더 큰 결실을 이루어낸 엄마들도 적지 않다. 나는 내가 닮고 싶은 엄마들을 보며 따라 살기로 했다. 그대로 살다보면 나도 그분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결과는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셋째가 이제 3살이니 적어도 앞으로 몇 년은 반주부의 삶을 살 것이다. 그 이후 나의 직업은 무엇이 될까. 여전히 반주부일수도 있고, 어쩌면 워킹맘이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 그 무엇이 되던 간에 오롯이 세 아이의 엄마로서 산 이 시간은 내 인생 전체를 돌아볼 때,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믿는다. 나에게도 아이들의 삶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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