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내가 꼭 하는 한 가지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귀마개를 찾는 일이다. 아이들 잠꼬대나 막내의 울음소리에 깨지 않고 숙면하기 위해서 잘 때 꼭 귀마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귀마개를 보관하기로 한 거실 책장의 안경통에 가서 찾아본다. 없다면 필통에서 찾아본다. 없다면 전날 입었던 잠옷의 주머니를 뒤져본다. 없다면 시댁에 갈 때 혹시 가져갔는지 가방 파우치에서 찾아본다. 그러다 정 못 찾으면 새 귀마개를 꺼낸다.
남편은 물건 관리를 잘 못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 늘 귀마개 리필을 사다놓는다. 내가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찾고 있으면 “여보 새 거 써. 여보한테 귀마개는 소모품이야.”라며 리필을 뜯어준다. 사왔을 땐 아직 있는데 왜 사왔냐며 나무랐지만 정 못 찾을 땐 남편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고 고마워하며 숙면을 청한다.
내가 늘 찾아 헤매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집열쇠이다. 이전 현관열쇠가 4, 5개였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2개를 잃어버리고 나머지도 하나씩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다. 도대체 그 열쇠들이 어디로 갔는지 정말 모르겠다. 한동안은 문 잠그고 다니길 포기하고 그냥 열고 다니기도 했다. 또 한동안은 열쇠에 내 주먹만 한 인형을 걸어서 찾기 쉽게 만들어놓기도 했었다. 모든 열쇠를 잃어버린 후 남편과 시어머님은 이번에는 번호키로 바꾸라고 하셨지만 나는 꿋꿋하게 열쇠를 고집했다. 번호키로 바꿔버리면 열쇠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이 습관을, 이 정신머리를 절대로 고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집열쇠 뿐이겠는가.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는 차열쇠까지 챙기는 일이 또 큰일이었다. 애 셋 데리고 주차장까지 갔는데 가방에 차열쇠가 없을 때 그 당혹감과 짜증을 어찌 말할까. 친구네 집에 놀러가기로 했는데 차열쇠를 찾지 못 했을 땐 차열쇠 찾는 그 십분 동안 하루에 쓸 정신적 에너지가 몽땅 소모되어 버리는 듯 했다. 살면서 지갑이나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였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정말 애를 낳으면서 내 정신도 같이 낳아 버린걸까 싶었다.
그러던 차에 '정리하는 뇌'라는 책을 읽게 됐다.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이라니! 홀린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 그 기술을 획득하게 될 거라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우선 머릿속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알려준다.
우리의 뇌 속에는 주위를 둘러싼 환경 중에서 어떤 것에 반응할 것인지 결정하는 주의시스템(attentional system)이 있다. 주의 시스템 중 주의 필터에서는 수백만 개의 뉴런들이 쉬지 않고 환경을 감시하면서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을 골라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은 그 개수가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다. 이른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는 대상의 개수는 최근의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4개라고 한다. 반대로 뇌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들을 완전히 무시한다. 정말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이를 알고 속이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대상이 4개인데 나는 이미 애가 셋에 칠칠치 못한 내 자신까지 합쳐 그 숫자를 다 채웠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잠깐의 외출이라 해도 셋째 여벌옷, 이유식, 간식, 기저귀, 물티슈 챙기고 애 셋 옷 입히고 나면 이미 나의 주의시스템은 과부하된 것이다. 그러니 집열쇠가 없다 해도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집에 들어왔을 때도 나의 주의력은 모래놀이한 아이들이 거실의 장난감으로 향하지 않고, 화장실로 직행해서 손을 씻는데 쏠려있다. 동시에 모래놀이도구를 정리하고 유모차에서 셋째를 내린 뒤 유모차를 접어두어야 한다. 그러니 이때도 집열쇠를 열쇠걸이에 걸어두어야 한다는 게 생각날 리가 없다.
두 번째로 내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이유는 여러 군데에 두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무언가를 기억할 때 서로 경쟁하는 여러 가지 기억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 중 한 가지를 골라낸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들이 많은 경우 그 기억들이 서로 섞여버린다. 안경이나 차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 하는 이유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장소에 물건을 보관했었기 때문에 뇌가 적절한 기억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댁 갈 때는 열쇠를 큰 가방 주머니에 넣고 도서관 갈 때에는 에코백에 넣었다가, 잠깐 산책 갈 때는 가방 없이 주머니에 열쇠만 넣고 나간다. 귀마개는 자고 일어나서 바지주머니에 넣었다가, 주머니가 없으면 아이들 손에 안 닿는 서랍장 위에 올려둔다. 그래서 이 둘을 찾을 때면 기억나는 곳을 다 뒤져봐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정리 원칙은 '정리'의 부담을 뇌가 아닌 환경으로 옮기는 것이다. 환경 그 자체를 이용해서 해야 할 일이 떠오르게 하면 가장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습관이 될 때까지 이를 강박적으로 지키는 것인데 나에게는 이 방법보다 '강박적'이라는 표현이 뇌리에 박혔다. 예를 들어 이불을 개다가 잃어버렸던 귀마개 한 쪽이 나오면 대충 서랍장에 올려두었었는데 이제는 이불을 내려놓고 거실 귀마개통에 가져다가 놓고 와서 이불을 갠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도 안경을 방 서랍장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찾는 일이 없도록 아예 거실 책장에다가 놓고 다시 방에 들어간다. 덕분에 흐린 눈으로 안경을 찾아 온 집안을 헤매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두 번째 방법은 물건을 내려놓는 순간 그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은 영어로는 'pay atten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직역하면 주의를 지불한다는 뜻이다.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어느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다른 무언가에는 주의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과 외출해서 돌아왔을 때 아이들에 대한 주의를 거두어들이고 우선 주머니나 가방에 있던 열쇠를 찾아 고리에 열쇠를 거는 데에 주의를 집중한다.
사실 나는 물건을 두는 일을 대충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집안에 있을 테니까. 하지만 대충 두었던 그 물건들을 찾느라 진을 쏙 빼고 결국 현관문 자물쇠까지 바꾸는 대가를 지불하고 보니 들어와서 바로 열쇠를 거는 그 주의를 지불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 이 책에는 필요한 물품을 한 주머니에 담아두면 매번 다시 담는 수고 없이 잘 챙길 수 있다는 팁이 나온다. 이를 보고 나도 필수품 꾸러미를 만들었다. 기저귀, 마스크, 열쇠, 지갑을 작은 주머니에 담아두고 가방을 옮길 때마다 이 주머니를 옮겨 담으니 확실히 더 잘 챙겨다니게 됐다. 이 방법을 첫째 때부터 생각하지 못했던 게 참 아쉽다.
육아 때문에 생활이 이토록 산만해지지 않았다면, 이토록 삶을 정리하려고 애써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육아를 통해 강제적으로 연마한 정리기술을 통해 내 삶은 더욱 정돈됐다. 어쩌면 이 책에서 알려주는 정리방법들은 별로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막연히 애 낳고 정신이 산만해졌다라고 치부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당신의 주의시스템이 과부하되서 그렇다'며 따듯한 위로를 해주었다. 덕분에 이제는 아이들이 크면 아이들에게 쏟던 내 주의력을 다시 내 자신에게 쓸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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