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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3. 미라클모닝




저혈압인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유난히 힘들고 오래 걸린다. 특히 셋째 수유기간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무한도전이었다. 첫째는 어렸을 때 내 머리카락 만지면서 잠드는 게 잠버릇이 되서 자다가도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깨고, 둘째는 피부가 예민해서 간지럽다거나 쉬한다고 깼다. 그 와중에 셋째 밤중수유까지 하면서 자고 일어나면 깊이 자지 못해서 뇌가 멍했다.




너무 피곤한 날은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면서 짜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냥 하루만 한 번도 안 깨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보는 게 소원이었다. 더 자고 싶은데 아이들이 자꾸 깨우니 억지로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육아의 벌판으로 던져진다는 게 서글펐다.




그렇게 14개월을 버티고 올해 초 드디어 셋째도 단유를 했다. 단유도 했으니 가장 하고 싶은 일이지만 늘 미뤄두었던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잔 다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잘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깨있는 동안 풀가동되던 뇌가 긴장이 풀리면서 아예 꺼진 느낌이랄까. 긴장을 풀고 남편과 야식을 먹거나 가벼운 책을 읽고 싶지 책상에 각 잡고 앉아서 다시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지가 않았다. 요일별로 일기쓰기, 강의듣기, 글쓰기를 하기로 정해보기도 했는데 단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그 동안 글을 쓰지 못한 건 피곤해서가 아니고 그냥 내가 게을러서 그렇구나'라며 절망하고 있던 차에 진짜 이유를 얼마 전 읽은 '정리하는 뇌'라는 책에 나온 실험을 보고 알게 됐다. 최근 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볼펜과 펠트펜 중 어느 것으로 쓸 것인가 같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결정들을 연이어 내리게 했다. 그러자 이 후의 결정에서는 충동조절능력이 떨어지고, 판단력도 저하됐다. 즉 우리의 뇌가 하루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의 개수에는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에 도달하면 중요도에 상관없이 더 이상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한다.




즉 나의 뇌는 낮 동안에 '아침을 뭘 차릴 것인가, 설거지를 지금 할 것인가 미룰 것인가, 낮잠을 재울 것인가 말 것인가' 등 이틀만 지나도 기억하지 못할 것들을 판단하느라 지쳐버려서 정작 밤에는 이 단어를 쓸 것인지, 저 단어를 쓸 것인지 판단한 힘이 없는 것이었다. 또한 뇌는 놀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고 책상에 앉을 절제력도 매우 떨어진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했다. 일어나자마자 글쓰기를 먼저하고 육아를 나중에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새벽기상은 시작됐다.








첫 번째 날은 6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낮이 되어도 생각보다 그리 피곤하지도 않았고, 하루 종일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 다음 날은 아이들과 8, 9시쯤 잠들었다가 4시 반에 일어났다. 자기 전 일어날 시간의 알람을 맞추는데 소풍 가기 전날처럼 설레었다. 자고 일어나면 나를 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애들 때문에 일어나야 할 때와는 기상 태도가 천지차이였다.




새벽에 일어나면 내가 좋아하는 코코넛 커피믹스를 마시며 혼자서 2시간 정도 성경 읽고 읽은 책의 좋았던 구절을 컴퓨터에 정리하든지 글을 썼다. 시간이 내 것인 기분이 얼마만인지. 더불어서 아이들이 깨어난 후의 시간도 더욱 온전히 사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를 2번 사는 기분이랄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낮2,3시쯤이면 굉장히 피곤해지는데 이 피곤조차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뿌듯함이 섞인 은근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내가 옆에서 자고 있지 않으니 아이들은 보통 7시쯤 일어나다가 6시 초반이나 늦어야 6시 반쯤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새벽기상을 해봤지만 포기했던 이유였다. 이렇게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아이들을 맞아준다. 집중에서 깨어나 잠이 묻은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면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온 양 내 집 거실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행에서 힘을 얻었기에 일상을 시작할 힘이 샘솟는다.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한 번은 셋 다 여섯시에 일어나서 남편이랑 너털웃음을 짓다가 마침 선물 들어온 카페 쿠폰이 생각나서 아침 7시에 삼남매를 데리고 나가 카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카페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가끔 애들 데리고 카페 가면 눈치 보느라 후다닥 마시고 일어났는데 아침 일찍 이라 손님이 없으니 애들이 좀 떠들어도 나무라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애들은 평소에 잘 안 사주는 샌드위치와 초코케이크, 핫초코로 호사를 누리고 셋째는 싸간 사과를 먹으니 카페가 다시 조용해졌다. 그제야 달콤한 커피향기가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상기시켜주었고,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미라클 모닝이 미라클 조식으로 이어져서 미안하다며 남편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했다.







새벽기상으로 인해 너무 피곤할 때는 점심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아이들이 놀이에 몰입하기 시작했을 때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눕는다. '엄마 들어가서 쉴게. 너희들끼리 놀아.'라고 말하고 들어가면 줄줄이 따라 들어오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몰래 들어가야 한다. 첫째, 둘째는 엄마를 잘 안 찾는데 셋째는 종종 엄마를 찾아서 선잠 자고 있는 나에게 돌진해 다이빙을 한다. 덕분에 심장마비 일으킬 뻔 한 적이 여러 번이다.




학창시절에 쉬는 시간 10분이라도 엎드려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했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깜박 졸고 일어나면 훨씬 정신이 맑다. 아이들이 잘 놀아주면 정말 다행이지만 셋 다 유난히 엄마를 찾고 같이 쉰다며 옆에 와서 얼굴 만지고 계속 조잘대는 날이 있다. 그럼 잠결에 '엄마 십 분만 쉬면 되는데 왜 십 분도 못 쉬게 해. 엄마가 쉬어야지 힘이 나서 나가놀지'라며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다 잠이 깨면 '그래, 애 셋 데리고 있으면서 잠시라도 누워서 쉰 게 어디야'라며 나를 다독인다.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은 힘들다. 단번에 일어나는 날은 거의 없고 10분 정도는 이불 속에서 미적거리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차버린 이불을 되찾아 목 끝까지 덮고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하며 선잠이 든다. 너무 힘든 날은 다시 잠든다. 하지만 시댁에서 잔다든가 해서 며칠 연속 나만의 새벽시간을 가지지 못하면 어느 샌가 내 마음 속에 불만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나에게 묻는다. '더 자고 이따 애들이랑 같이 일어나도 오늘 기분 괜찮겠니?' 그럼 기분이 쎄해지면서 눈이 떠진다.




작심삼일이라도 해보자는 미약한 시작이 한 달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어렵지만 시작한 내가,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새벽기상 전에는 '지금은 육아 말고 다른 건 제대로 할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며 나의 가능성을 제한했었는데 이제는 하루 2시간이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새벽 일찍 일어나 갖는 자기만의 시간을 '미라클 모닝'이라고들 한다. 유튜브에 보면 '미라클 모닝 몇 개월 차 삶이 변했어요'하는 영상도 많이 있다. 나는 이제 한 달이 좀 넘은 터라 삶이 변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내게 일어난 작은 기적을 찾자면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고, 밤에 설레면서 잠들게 된 것이다. 자기 전엔 내일 아침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며 설레고, 아침에 일어나면 달콤한 커피와 쓰고 싶은 글로 인해 행복하다. 이 아침들이 모여 내게도 더 큰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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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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