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두 살에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 뒤로 아이 둘이 더 태어나 삼남매가 되기까지 5년 동안 살았던 집은 아파트였다. 세 아이가 만들어내는 층간소음이 엄청 났을 텐데 다행히 아랫집 분들은 마음이 넓으신 분들이어서 가슴 졸이며 지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다른 아파트로 이사한지 3주 만에 넷째 아이가 찾아왔다. 고작 3주 동안이었지만 아랫집 눈치 보며 온 가족이 받는 스트레스가 무척 컸다. 그 때 마침 넷째가 찾아와서 우리 부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단을 해야 했다. ‘가자, 주택으로!’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집 보러 다니고, 이사하면서 진이 다 빠졌기에 또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것조차 너무나 버거웠다. 그러던 차에 시어머님 지인께서 외곽에 있는 주택이 아주 싸게 전세로 나왔다고 알려주셔서 우선 보러갔다. 눈이 녹아 질척이는 아스팔트길을 달려 도착한 동네는 아직 ‘설국’이었다. 사람 많은 동네의 눈들은 발과 바퀴에 밟혀 지저분하게 녹아 사라지는데, 시골의 눈은 타이어 자국 몇 줄만 새긴 채 고스란히 하얗게 쌓여있었다. 차 없는 눈길에는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고 있었다.
1월이라 마당은 수확하고 남은 마른 줄기들과 잡초뿐이었고, 집안도 꽤 낡아보였다. 마지막으로 옥상에 올라갔는데 시골이니 시내처럼 시야를 막는 건물이 하나도 없이 사방으로 트여 있었고, 밤새 눈이 쌓인 작은 산들이 동네를 안온히 감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산 입구에 들어섰을 때처럼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매캐한 매연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겨울공기와 함께 ‘여기에 살고 싶다.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가득 찼다.
이사 온 다음 날, 교회 가는 길은 동물 농장이었다. “와, 강아지다.” 소리 지르며 아이들이 달려가니 딱 우리 집 삼남매 같은 새끼 강아지 세 마리도 아이들을 향해 달려왔다. 세 아이가 사이좋게 한 마리씩 맡아서 쫓아가고, 껴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겨우 강아지들을 떼어놓고 좀 더 걸어가니 닭과 칠면조들이 논과 골목길을 제 집 마당처럼 활보하고, 탱자나무에는 참새들이 초등학교 하교시간마냥 떠들어대고 있었다. 첫째는 하늘에서 이전 집 주변에서 자주 보던 비둘기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흰머리독수리(서식지가 북아메리카인데...)’를 봤다며 신이 났다.
집 안에서는 ‘조용히 해라, 살살 걸어라’라는 말이 사라졌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와 ‘점프’라는 말이 등장했다. 밤에도 아파트에서 연습할 수 있게 사준 디지털피아노로는 녹음되어 있는 댄스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셋이서 땅 속 두더지가 항의할까 무섭게 쿵쾅댔다. 운동을 좋아하는 둘째는 거실에서 롤러블레이드와 줄넘기를 익혔고, 첫째와 둘째 모두 수시로 마당에 나가 자전거를 타더니 두발자전거 타는 법도 금세 배웠다.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려면 꼭 따라 나가야 했는데, 넓은 마당이 생기니 나는 집안에서 할 일을 하다가 가끔씩만 아이들을 확인하면 되니 편했다. 물을 싸갈 필요도 없고, 마스크도 안 하고 내복 차림에 그냥 신발만 신고 나가면 놀이터였다.
아파트에 살며 창밖으로는 주변 건물의 옥상과 하늘만 보며 지냈는데, 안방 이불을 개다가 무심코 창밖을 보니 새순이 돋는 앵두나무가지와 아기주먹만한 둥그런 파꽃이 나와 보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다섯 걸음만 걸으면 땅이었다. 아파트에 살 때도 가끔 이틀 정도 집 밖에 못 나오다가 밖에 나와 땅을 디디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었다. 뒤이어 독일에서 3년을 지내다 귀국해 비행기에서 내려 땅을 밟았을 때 느낀 묘한 안도감도 겹쳐졌다. 독일 생활이 즐거웠지만 거주하기 위해 비자를 연장해야 하고, 말할 때 문법을 염두 해야 하는 타국생활엔 늘 옅은 긴장감이 흘렀다. 발 디디고 선 바닥이 허공에 뜬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라 흙으로 채워진 땅이라는 사실은 모국과 모국어처럼 삶을 더욱 견고하게 떠받쳐주었다.
새벽에는 한 처마 아래 같이 사는 참새 새끼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깬다. 거실에 나와 창을 여니 마당은 단풍나무와 전봇대 줄 사이를 경주하듯 오가는 작은 새들로 북적인다. 집 옆의 산 속에서도 흔히 듣지 못했던 동고비, 지빠귀, 노랑할미새 소리가 아스라이 들린다. 아파트에서도 새벽에 일어나 작은 새들의 몸체만큼 작고, 맑은 노래 듣는 걸 좋아했었다. 낮에는 길가에서 푸드덕 대는 비둘기 소리와 크게 부르짖는 까마귀 소리만 들렸고, 작은 새들은 차가 움직이는 시간이 되면 모습도 소리도 자취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새벽만이 ‘작은 새들의 시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골에 살며 보니 작은 새들은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 종일 노래하고 떠들어댔다. 아파트에 살 때는 작은 새들이 내가 사는 곳에 왔었다면, 이제는 새들이 사는 곳에 내가 이사를 온 셈이다. 새들도 마당에 자주 나와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이전에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용했는데 이번 이웃은 좀 많고, 시끄럽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 집에 사이좋게 새들도 살고, 우리 가족도 살고 있다.
홈스쿨링, 가정보육 중인 사남매 일상이 담긴 유튜브채널 [사남매일기4kids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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