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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느의 밤, 멘토와 함께 춤을_2부

by 해피써니

1부에서 이어집니다.

08화 깐느의 밤, 멘토와 함께 춤을_1부



화이트 드레스에 베이지 하이힐, 핸드백은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 밤을 온몸으로 지새웠다. 춤으로 인사하고, 춤으로 가까워졌다. 무대는 점점 비워졌고, 새벽 2시가 지나서 브라질 팀과 한국 팀, 그리고 프랑스 본사 팀만 남았다.

나는 브라질에서 온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와, 진짜 멋지다. 어떻게 이렇게 소울(soul) 충만한 삼바를 출 수 있어?”

“우린 삼바가 일상이잖아. 같이 출래? 하나 둘 셋 하면 따라 해 봐!”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삼바 레슨은 어설픔과 웃음 속에서 이어졌다. 몸짓도 멋졌지만 진짜 눈에 띈 건 그들의 표정이었다.

춤을,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 밤의 공기, 웃음, 음악, 박수 그리고 분위기.

지금도 그 장면은 내게 꿈처럼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꿈결엔, H가 있었다.



세 시간쯤 잔 뒤, 습관처럼 체중계에 올랐다. 1kg이 더 빠져 있었다. 삼바의 효과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입안은 바싹 말랐다.


내 발표 순서는 다섯 번째.

하필이면 그 앞이 미국과 영국 팀의 듀엣 발표였다. 원어민들의 프레젠테이션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하필 왜 내 앞이람…’


그때, H와 눈이 마주쳤다. “할 수 있어” 같은 격려는 없었다. 오히려 “끝나면 맛있는 거 먹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눈빛 덕에 겨우 안정을 되찾고, 프레젠테이션 무대에 올랐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얼굴들은 하나같이 또렷했다.

나를 응원하는 아시아 팀, 이메일로만 소통하던 프랑스본사 동료들, 함께 춤을 췄던 브라질 팀, 그리고 정면에는 글로벌 CEO까지.

“Good morning, everyone. I'm here to share Korea's best practice…”

내 영어 발음이 완벽할 리 없었지만, 연습한 대로 끝까지 마무리했다.

“Thank you.”

무대 아래로 내려오려는 순간, 평소 다가가기 어려웠던프랑스 본사 동료가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울컥했다. 한 달 넘게 준비해 온 발표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해냈다. 내 인생 첫 글로벌 데뷔 무대를.



세미나가 끝난 뒤,

H와 나는 깐느 앞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업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둔 채, 못다 한 이야기로 밤을 물들였다.

“우리가 삼바 직강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삼바 출 때는 이상하게 더 자유로웠어요.”

“그치? 나도 그런 느낌이었어. 어제 그 순간들이 오늘 멋진 발표를 만든 것 같아.”


그날 이후, 그녀는 단지 동경의 선배가 아니라 내 삶에 진짜 영향을 준 한 사람이 되었다. 일에 성실하면서도 사람을 놓치지 않는 사람. 각 나라의 장점을 놓치지 않고 칭찬하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함께 고민하는 사람. 그래서일까. 많은 외국인 동료들에게 그녀는 K-POP 스타처럼 인기가 많았다.


"지난달에 다섯 나라 돌았는데, 아직도 못 올린 출장비 영수증이 책상에 한가득 쌓여있어. 어때, 나 보니까 좀 위로되지?"

그런 말에 나를 한 번 더 웃게 만드는, 인간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12년의 나이 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H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녀의 따뜻한 태도 앞에서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교육팀에서 일하며 내가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었던 건, 그녀 덕분이었다.

깐느의 그 밤, H와 함께한 그 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습 무대'였다. 7년이 흘렀지만 그 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다시 그 밤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또 무대에 오를 것이다.

그때처럼, 그녀가 있어 빛났던, 그곳에서.


계속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냐,

춤을 출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나는 네가 춤을 추었으면 좋겠어.

— 의역: Lee Ann Womack, 〈I Hope You Dance〉 가사 중에서




무더운 8월, 이곳은 롯데월드 어드벤처.

깐느 해변보다 더 뜨거운 이곳에서는

삼바 퍼레이드가 한창이다.

“야야 아아야! 우후후 후!”

퍼레이드를 보면서 어설픈 삼바 스텝을 밟는 지금의 나는 7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있다.


드레스 대신 청바지를,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가벼웠던 두 손 대신

사랑스러운 다섯 살 아이를 품에 안고

이젠 무대가 아니라
사람들 틈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그저 리듬에 따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변함없는 건,

그때처럼 살아 움직이는 내 안의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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