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 Chun Aug 09.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아빠라는 이름

나는 두 아들의 아빠다! 

서늘함이 느껴지는 가을 아침 공기를 가르며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를 달리고 있다.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뛴다. 상쾌함에 기분 좋은 출발이지만 이내 일생에서 가장 고된 추억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마라톤을 해온 사람도 아니고, 마라톤 마니아는 더더욱 아니다. 3달 전 마라톤 마니아 한분이 함께했던 저녁식사자리에서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로 인해 내 생에 가장 힘든 도전을 하게 될 줄이야..

"42.195Km를 5시간 내로 뛴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에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럼 3달 뒤에 춘천 국제마라톤이 있는데 한번 걸어보시죠?"


굳이 입증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공학분야에서 무언가를 규명하고 입증하는 연구를 해온 직업적 사명감에 빠져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5시간이면 완주가 가능하다는 산술적 계산 결과를 몸소 실험해 보이기로 했다.

참, 어리석은 동기에서 마라톤에 도전했으니 이런 바보 같은 선택이 또 있을까? 


레이스가 시작되었을 때 처음 5Km는 상쾌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듯 내게 다가와 행복한 쾌감마저 밀려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내 뜻처럼 움직이지 않았으며, 다리 인대가 늘어났는지 걷는 것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힘들면 언제든 포기하라고 의료차량이 군데군데 문을 활짝 열고 대기하며 유혹하고 있어 레이스를 하는 내내 모든 마라토너들이 포기하고 싶은 갈등과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10Km 지점부터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포기해야 할지 계속 가야 할지, 계속 가면 과연 5시간 내에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할지.. 그때 옆을 지나치는 한 사람이 절룩거리는 나를 향해 한마디 던지고 사라진다.

"다리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포기하고 의료차량에 올라가세요!" "잘못하면 평생 못 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다음 저녁식사 모임에 나가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 자존심은 10Km를 더 뛰게 만들었다.


20Km에 다 달았을 때는 오른쪽 발을 제대로 내딛기가 힘들어 이제 정말 포기를 해야 할 순간이 왔다. 몸이 자연스럽게 대기 중인 의료차량을 향해 움직였다. 그런데 차량에 올라타려는 순간 문득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엇이든 쉽게 포기해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도 이룰 수 있는 게 없어!" 바로 얼마 전에 두 아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두 아들에게 다시는 해줄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마라톤에 참여의 바보 같은 선택의 문제가 이 힘든 상황에서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지키고자 하는 신뢰의 문제로 비약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 아이들에게 말뿐인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말자!

이 말을 되뇌며 10Km를 절룩거리며 더 갔다. 어느덧 마라톤 행렬의 가장 후미에 자리하고 있었고, 기준시간을 초과하는 후미그룹을 수거하는 차량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의 통증은 더욱 심해져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함께 나왔다. 


마지막 10Km는 거의 왼쪽 발로 절룩이며 갔고 가까스로 기준기록을 지켜서 목표지점에 골인했다.  완주의 대가가 큰 상금이었다면 일찍이 포기했을 것이다. 레이스를 마치고 일주일 간 병원을 다니며 나를 강하게 만들고,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이 두 아들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오늘도 우리 모든 아빠들은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아빠라는 직분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수행 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