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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Apr 03. 2021

미국 주택에 살아보니...

창고를 짓다.

 한국에 살 때는 사람들이 집에 놀러 오면 "은퇴하고 나도 이런 집 짓고 살아야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주택에서 살려면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행복으로 여길 줄 알고 부지런해야 한다."라고 단호히 말했던 기억이 난다. 괜히 멋스러워 보이는 생각에 덜컹 전원주택을 짓고 살다 보면 집과 정원을 관리하고 유지 보수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상상 속 생활과는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거기에 텃 밭이라도 덧붙여 만들면 정말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전원주택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한테 "멋진 집은 건축 설계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완성한 집을 꾸준히 정성으로 가꾸어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함께 해주곤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니, 살다 보니 만물박사가 되어가는 것은 물론,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부지런해져 간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인건비가 비싸다 보니 미국인 들은 누구나 스스로 집을 고치고 유지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대부분 미국 집들은 나무를 이용해 조립식으로 지은 집이 많아서 구조변경과 수리가 용이하다. 반면, 완공하고 10년이 넘은 미국집들은 고장이 많다. 그중 히터나 에어컨은 대부분 일체형으로 집의 지하나 차고, 집의 지붕과 천장 사이의 공간 등에 설치되는데 고장이 나면 유지보수에 돈이 제일 많이 드는 놈들이다. 따라서 집이 낡았어도 미국에서 주택을 살 때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 들이다.


사실, 미국의 주택으로 이사해서 지붕 누수에서 바닥까지 고장 나지 않았던 것이 없었다. 그때마다 수리공을 부르면 고치던 안 고치던 출장비만 100불씩 나가는 상황이니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 관념이 나를 기술자로 변모시켜 가고 있었다. 만일 이런 수고를 감내할 용기가 없다면 새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도 꼭 사람을 사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지붕에 문제가 있거나 높은 곳 물받이를 청소하는 일 들은 사고의 위험이 있어 내가 직접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오랫동안 살아 본 터라 미국의 주택관리가 뭐 그리 어려울 것 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배관, 전기 등 집 구조가 한국과 달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집의 수리, 보수에 대한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가 많아져서 딱히 기술이 없어도 집을 유지 보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미국에 거주하게 되면서 주택으로 이사하고 홈디포(Home Depot)를 방문했을 때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전시된 종류가 너무 많아 놀랐고, 집과 인테리어, 정원에 관계된 모든 것이 규격화되어 관련 부품을 쉽게 찾아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 부럽기까지 했다. 주위에 홈디포만 있으면 작은 집을 하나 뚝닥 건축하는 것은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듯 보인다.


봄꽃이 피는 이때쯤, 단지 내 사람들이 집을 고치기 바쁘다.

앞집은 큰 나무를 베고 있고, 옆 집은 펜스를 수리하고 있다. 조지아는 집 근처의 나무 한그루 베어내는데 대략 1000불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나무 크기가 크면 돈을 더 낸다. 매년 집 주위의 나뭇가지를 직접 치고 자르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커 버린다. 큰돈을 지불하지 않으려면 나무가 크기 전에 열심히 잘라주어야 한다.


집과 정원을 가꾸는 데는 규칙이 있다. 내 집인데 내 마음대로 페인트칠이나 정원의 변경이 어렵다. HOA(관리사무소)에서 주변 집에 어울리지 않으면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잔디관리부터 집 관리까지 게으르면 지적을 받고,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게을리 살 자유도 없다. 한국문화에 익숙한 나로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다. 내 집을 내 마음대로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한걸음 뒤에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어울려 살려는 생각이 담겨있다고 이해된다. 오히려 모두가 부지런히 집을 가꾸어야 단지 전체의 집값도 오를 것이고 결국 자신에게도 좋은 것이 된다.


집을 팔기 위해서는 냉장고도 바꾸고 고장 난 것들도 수리를 해야 한다. 한국과 크게 구별되는 것 중 하나가 집을 팔기 위해 열심히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럭저럭 살다가도 집을 팔기 위해 큰돈을 들여 집을 수리하고 고친다. 보통 집을 사는 사람은 인스펙터를 고용해서 집의 문제점 들을 모두 파악하기 때문에 집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고쳐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마치 새집처럼...(적어도 겉보기에는)

미국인 대부분이 모기지로 집을 사기 때문에 집을 사고 들어와서 현금 들여 집을 고칠 여유가 없다. 30년 모기지로 매월 얼마씩 지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집을 고치고 수리할 자금은 많지 않은 것이다.



지난여름, 백 야드에 창고 하나가 필요해서 조립식 창고를 알아보니 웬만한 것 가격이 3000불은 족히 넘었다. 너무 비싸거니와 운반하여 설치하는 비용까지를 생각하면 직접 짓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 짓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집을 짓고 살았던 경험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집을 짓던 때 전문가들이 일하는 것이나 유튜브에서 뚝딱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을  눈으로만 지켜보았던 탓에 막연히 뭐 딱히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던 게 사실이다. 대부분 일들이 너무 쉽게 여겨졌던 탓에 "창고쯤이야" 하고 얕잡아 본 것이 큰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들뜬 마음에 자신이 훌륭한 목수가 된 듯한 설렘으로 자재와 공구를 사모으며 들떠 있었지만,  공사를 시작하고 이틀이 지나면서 차라리 조립식 창고를 사 오는 건데 이 고생을 한다는 후회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3일이 지나면서부터는 근육통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어가고, 못질과 톱질로 오른팔은 인대에 무리가 갔는지 통증이 심해졌다. 왼손 엄지 손가락은 서툰 망치질에 멍이 들었다.


말이 창고지 뼈대 설계부터 바닥 다지기, 지붕공사, 출입문 등을 갖추어야 하니 만만하게 볼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우든 적응을 잘하니 말이다. 

5일이 되자 몸은 힘들어도 아침에 일어나 일터에 출근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다. 마치 직업 목수가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몸의 고단함은 야릇한 행복의 씨앗이 되어 마음속에서 커가고 있었다.

 

"만일 다음 생이 있다면 꼭 목수가 되고 말겠어." 이런 혼잣말을 내뱉기도 한다.


아내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사모은 공구는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만큼 많아졌고, 공구 사는데 들인 돈을 생각해서라도 이 창고는 멋지게 완공해서 자랑하고 싶었다. 

사실 백 야드 출입문을 새로 고쳐야 하는 상황이고 거기 연결해서 옆집과 경계용 펜스를 대신할 필요가 있어 그곳에 펜스 목으로 창고를 짓는 것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혼자 시작한 작은 창고 공사는 일주일 이상을 온종일 죽도록 고생한 끝에 완성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의 기쁨을 깨닫게 된 것에 더욱 만족했다. 


백 야드에 요즘도 자주 나간다. 혼자 힘으로 땀 흘려 완성한 창고를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재료비를 포함해 완공까지 원가를 따져보니 1500불 정도 든 것 같다. 육체는 고단해도 기쁨이 배가되었다. 창고를 사 오는 것보다 돈도 절약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의 창고 짓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가 했지만 요즘 비 오는 날이 되면 아내의 잔소리에 시달린다. 비가 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붕공사를 다시 해야 할 듯하다. 


4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창고 지붕공사, 펜스 노후된 블록 교체, 잔디 풀 죽이기, 내부 페인트 칠....  정말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땀 흘리며 일하고 난 후 밀려드는 육체의 고단함이 주는 쾌감을 알기에 이 모든 일들은 내게 고마움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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