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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Apr 09. 2021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이 들다.

사람이 살아가며 계절을 이해하는 것은 철(봄, 여름, 가을, 겨울)이 드는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철을 구분하여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은 인간의 삶이자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씨를 뿌리고, 가꾸며, 수확하고, 준비하는 때를 알지 못하는 행위를 철없는 짓이라 여긴다. 모든 계절의 시작은 딱히 구분 짓기 어렵지만 계절이 주는 느낌과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계절이 사람들 마음에 들어와 자리하는 모습도 제각기 다르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색과 맛 그리고 향기와 촉감을 담고 있다.





이른 계절 추위에 몸을 떨며 일어선 노란 수선화의 애잔한 인사.

쑥과 냉이가 주는 진한 향기

연두 빛의 푸르름 속에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

행복이 되어 내리는 비, 는개 맞으며 걷는 산책

향 진한 두릅을 초장에 찍어 입에 가져올 때의 행복



여름


산과 계곡, 바다를 두고 고민하는 먼 여행의 설렘

뜨거운 햇볕 속 그늘과 만남의 장소, 소담한 정자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는 길,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남해 푸른 바닷가와 접한 드라이브 코스

톡 쏘는 사이다에 얼음 가득한 수박화채가 주는 기쁨



가을


잔잔한 음악 속 파란 하늘 위에 떠올리는 누군가의 얼굴

늦가을 스산함에 뒹구는 낙엽

금빛 곡식으로 가득한 풍요로움

이삭을 줍던 시절의 추억

꼬막정식 한 끼  



겨울


옹기종기 포장마차 속 따스한 온기

꽁꽁 얼어붙은 추위 속 논두렁을 질주하던 썰매

따듯한 아랫 묵을 내어주시던 할머니의 사랑

햇살에 번뜩이며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동짓날 팥죽 한 그릇




- 가녀린 모습의 노란 수선화 꽃이 이른 봄 꽃샘추위 속에 내린 눈송이를 힘겹게 짊어지고 있다.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 봄의 길목에 어김없이 세상에 나오는 쑥과 냉이는 나를 건강하게 한다. 음식이 되어 육신을 건강하게 하고, 향기는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 내게 연둣빛은 묘한 마법의 색이다. 없던 희망을 샘솟게 하고, 어디선가 기쁜 소식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연두 빛 숲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온다. 새들이 나를 축복한다.

- 비가 행복이 되어 온다. 는개를 맞으며 걷는 것은 내게 행복이다.

- 푸릇하게 고개 내민 두릅을 잡아 내리면 "똑" 하고 떨어진다. 향을 먹는다.



- 여름휴가는 휴가지에서보다 휴가 떠나기 전의 설렘이 좋다. 좋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그 설렘은 배가된다.

- 시골의 마을마다 정감 있는 정자가 한편씩 있다. 시원한 그늘과 만남의 장소이다. 먼길 여행하는 더위에 지친 나그네가 요란한 매미소리 벗 삼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 차가 다니는 길이 정비되기 전 지리산 노고단 길을 걸어올라 본 적이 있는가? 멀고도 지루하다. 하늘 덮인 나무 숲길을 끝 모르고 오르다 보면, 포기하지 말라며 한가닥 시원한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지난다.

- 청록빛 바다의 남해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보자. 오픈카가 아니라면 모든 창문을 열고 청록빛 바다를 만나자.

- 열대야에 잠 못 드는 기나긴 여름날 밤, 얼음 듬뿍한 수박화채 한 그릇은 무더운 여름이 싫지 않은 한 가지 이유가 된다. 



- 파란 가을 하늘을 팔베개하고 마주하며 누워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 또렷해지는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 가을의 끝자락에 매달린 스산함이 좋다. 찬서리로 그려진 창문의 눈꽃 그림이 햇살에 녹아내리며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그것을 바라보는 여유 있는 삶이 좋다.

-  허수아비 밀짚모자, 펄럭이는 은박지,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 곡식이 펼쳐진 들판에 빨간 고추잠자리 맴도는 광경이 내게 너무도 소중한 추억이 될지를 해외에 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 추수가 끝나고 서리가 내릴 즈음 논바닥에 버려진 이삭을 주워야 했던 춥고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이젠 이 아픔 마저도 추억이 되었다.

- 꼬막 정식 한 끼를 먹겠다고 4시간을 꼬박 운전하고 벌교까지 달려갔던 열정이 그립다.



- 곰장어 지글지글 굽던 포장마차 속 이야기가 그립다. 그때 느꼈던 사람 사는 온기가 그립다.

- 솜씨 좋은 형님이 만들어준 외발썰매를 달리던 논두렁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마을 아이들의 아이스링크였다.

- 할머님은 항시 많은 것을 품고 계셨다. 손자가 원하는 것들은 뭐든 있었다. 맛있는 곶감, 쌀과자, 사탕,..

추운 날씨에 뛰놀며 파랗게 얼은 손과 발을 아랫 묵 이불에 꼭 감싸주던 할머니의 정을 잊지 못한다.

- 햇 빛에 반짝이는 고드름을 점차 보기가 힘들어진다. 어린 시절 고드름은 무료함을 달래주는 좋은 장난감이 되곤 했다. 맛있는 얼음과자가 되기도 했다.

- 밤이 긴 동짓날 팥죽은 귀신을 쫓고 액운을 막기 위해 먹었다고 한다. 찹쌀로 빚은 하얀 새알심이 붉은 팥죽에 밤하늘 달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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