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 와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간절하게 생각날 때가 있다. 한인이 많은 주에 살다 보니 한국음식점과 식료품을 쉽게 접할 수 도 있지만 미국에서 경험하는 한국 음식의 맛은 뭔가 1,2 프로 부족하다. 재료도 같고 모양도 같지만 맛은 다르다. 자장면이나 짬뽕의 맛이 그렇고, 순두부찌개, 갈비탕, 김치,........ 등등 대부분 한국에서 내가 경험했던 그 맛과는 뭔가 다르다.
여수 부두가에서 먹던 잘 삭힌 홍어삼합이나 홍어 애국, 강진 어딘가에서 먹었던 물회, 쏘가리매운탕, 꿈틀대는 낙지,... 이들 모두 미국에서 먹기 힘든 음식이다. 미국에 살며 생각나는 음식이 이들뿐만이랴. 돌솥밥에 알 가득한 간장게장 한입은 맛의 경계를 넘어 긴 세월 동안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되었다.
전날의 숙취를 개운하게 만들어주던 선지해장국, 오동통한 전복뚝배기, 추어탕,........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침이 고이고 행복해진다. 타향살이에 우리의 음식들은 추억이며, 그리움이며, 간절함이다.
이따금 한국에 갈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챙기는 것 중에 하나가 음식 먹는 순서를 마음에 적어두는 것이다. 장어구이, 보쌈, 송이와 한우, 보리굴비, 산나물 가득 넣은 산채비빔밥, 가을전어,......
이번에 한국에 가면 만나고 싶은 놈들이다.
젊은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한국 음식의 맛이 나이 들며 하나 둘 연인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음식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수고가 담겨 완성된 것인지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한 것 같다. 세상의 욕심들과 이별하고, 생활의 평온함과 소소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평생을 먹어온 음식의 맛을 진짜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사람보다 음식에 대한 추억이 한국을 그립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섬세한 미각을 통해 뇌 깊은 곳에 차곡차곡 간직된 오묘한 맛의 기억은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삶의 일부이고 추억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조지아주는 한인이 많이 거주해서 대형 한국마켓과 한국 음식점들이 많다. 순두부와 같은 찌개를 판매하는 식당, 중국음식점, 초밥집, 순대곱창집, 갈비탕, 구이집등 수많은 한국식당들이 있지만 매번 그리움 가득한 음식들을 만날 수 있는 식당을 찾기에 목마르다.
10년이 다되도록 산채비빔밥을 먹어보지 못했고, 보리굴비도 보지 못했고, 오늘도 얼큰한 선지해장국 하는 집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있다. 운 좋게 그날 생각나는 음식과 비슷한 것을 찾아도 맛에 대한 만족보다 추억을 조금 달랠 뿐이다.
요리에 대해 무뇌 안이지만 한국음식은 미국음식과 달리 갖은양념 중에 정성이라는 최고의 양념이 추가되어야 제맛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살고서야 깨닫다니..
오늘도 아내가 직접 해주는 한국음식들에 감사한다.
요즘은 깻잎, 미나리, 토란, 부추, 도라지와 같은 야채들이 아내의 텃밭에서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것보다 큰 기쁨은 없다. 아내는 오늘도 텃밭에 찾아오는 불청객과 실랑이 중이지만 토마토, 오이 등을 사슴, 토끼들과 공유하며 사는 삶에 순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