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5분

by 정오의 햇빛

요가 강사가 인도하는 명상 멘트들이 아주 마음에 잘 와닿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거는 명상 인도 방식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의 존재 상태가 온전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판단이나 평가나 비난이나 어떤 생각이 없는 상태, 내 마음이 마음과 생각이 바쁘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강사가 말하는 대로 이끌릴 수 있는 상태, 강사가 가라고 한 그 지점에 갈 수 있었던 내 마음의 상태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강사의 인도 능력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준비된 멘트만을 읽어줘도 가능하다. 물론 강사가 여러 부분에서 무의식적으로 충돌을 일으킨다면 인도에 잘 끌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 강사의 태도, 자세, 평소의 언행 이런 것들이 거슬렸다면 그가 아무리 잘 인도한다 해도 따라가기 힘들 수 있다.


내가 아무 판단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사가 유도하는, 강사가 말하는 그 자리로 마음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경험한 명상적 고요함과 평화로움과 존재가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강사의 말에 저항 없이 따라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따라가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요구하는 어떤 생각이나 태도나 행위에 대해서 내가 동의되지 않고 그들이 설명하는 그 자리에 가 있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평화로운 느낌 처음이었다.


강사의 인도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해하려 하고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나중에 써먹으려 저장하려 하고 이 모든 게 동시에 돌아간다.
몸은 매트 위에 있지만, 마음은 늘 관리 모드에 있다. 그리고 존재 상태는 따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동작은 모방할 수 있고, 말은 따라 할 수 있지만 ‘비어 있음’, ‘저항 없음’, ‘평가 중지’는 의지나 노력으로 흉내 낼수록 멀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려고 애쓰는 명상”을 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로 가는 중으로 훈련되어 있고, 지금 여기 “머무는 상태”는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요가 명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집에서 한 네 번 정도 오분 간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기 내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연습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연습을 할 때는 그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실제로 효과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어떤 구조로 가기 전에 오분 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졌고 어떤 구조에서 나와서 돌아올 때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분을 보내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잠잠해지고 공간이 나를 환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공간이 나를 환대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내 몸 안에 들어온 나를 몸이 환대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환대라는 표현보다 몸 안에 내가 들어올 때 몸이 느끼는 편안함 신경계의 안정감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공간이 나를 환영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환영하는 거를 나의 실체 없음으로 공간에 투사한 느낌일 수 있겠다.


나는 몰랐지만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5분이 영상에서 그런 평화를 경험하게 했고 그 이후에 내가 어떤 계기만 있으면 특별하게 이유가 없어도 어떤 행위 전이나 후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5분을 끼워놓고 있다. 그건 내가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좋았기 때문에 나는 아직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무의식에서 그 행동을 자꾸 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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