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평생을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치유와 상담, 철학과 종교 심리공부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구하려 애썼지만, 어떤 방법도 나를 평안하게 하지 못했다.
그럴듯한 말들은 많았다.
“이러해서 저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말은, 그럴듯했을 뿐, 나에게는 진실이 아니었다.
진실은 내가 서 있는 바닥, 내 감정의 토대에 있었는데, 나는 그 바닥을 보지 않은 채 외부의 구조물 위에 나를 얹으려 했다.
긴 세월 동안 명상과 요가, 마인드 컨트롤, 심지어 최면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에게 유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올바른 정보가 아니었고, 나는 그것을 왜곡되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모든 시도는 더 큰 쓸쓸함과, 더 단단한 ‘방법이 없다’라는 벽만 남겼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방법들은 나를 구하지 못했다.
그 실패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평안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기존 관념들은 모두 기울어진 바닥 위에 세워진 개념이었다.
그 바닥을 다시 세우고, 내 언어로 개념을 재정리한 이후에야, 나는 내 감정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었다.
불편함과 혼란 속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고, 마침내 어떤 방법론도 실행할 수 있는 신뢰가 생겼다.
왜 기존 방법들이 실패했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방법이나 기술이 아니라, 내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토대, 내 인식의 구조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바닥위에 정보를 세우고 왜곡된 해석을 쌓았던 나는, 어떤 외부 기술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바닥을 바로 세우기 전까지는, 모든 방법이 허공에 부딪히는 소리만 남았다.
그 인식의 전환은, 내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시작점은 기술이 아니라, 자기 언어로 개념을 정리하고, 기울어진 바닥을 바로 세우는 데 있다. 신뢰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회복된다. 그 신뢰 위에서야, 나는 다시 시도할 수 있고, 그 시도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신뢰 위에서 작은 경험들을 기록한다. 길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마주치는 시선과 말, 몸짓 하나에도 마음이 반응하는 방식을 지켜본다.
일상 속에서 나는 감정의 잔잔한 파동과, 그것이 나를 흔드는 순간들을 글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 기록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세계를 다시 만난다.
비로소 나는 감정을 단순히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과 관계 속에서 서 있는 존재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