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싸구려 과자와 값싼 단맛으로 가득하다. 내가 아는 맛은 유일하게 단맛이다.
그 단맛만이 잠시라도 나를 행복하다는 착각, 평안하다는 착각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해 줬다. 내 모든 심리적인 어려움을 도파민으로 잠시 모면하고 사라지지 않는 어려움을 계속 유예한 채 세월을 보내는 것 이외에는 나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과거를 바꿀 수도 미래를 원하는 대로 조각할 수도 현재조차도 나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슬펐고 쓸쓸했던 모든 순간을 가장 값이 싼 과자와 가장 값이 싼 설탕으로 대체했다. 나는 아마 알았던 것 같다. 그 대체재로서 비싸거나 좋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건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바삭거리고 푸석거리고 달기만 하면 나의 감정은 잠시 미뤄졌기 때문이다. 고급 과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과자 자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몸에 좋은 유기농 과일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걸 원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지금을 모면할 수 있는 진통제가 필요했던 것뿐이다.
어느 날 그 진통제가 너무나 너무나 감출 수 없이 분명하게 허접한 대체재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나의 어려움은 나 여기 없음이지 그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었다. 나 여기 없음을 다른 사람을 들이고 다른 행위를 다른 구조를 들이고 돌볼 어떤 것을 마련하고 그렇게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은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는 유용했다.
자식이라는, 돈이라는, 사회적인 위치라는, 관계라는 여러 가지 이름의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조차도 바삭거리는 과자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참 씁쓸한 이야기다. 내가 자식을 내 감정의 돌파구로 사용하고자 낳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나의 감정을 밀어두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얘기다.
결혼 생활도, 돈도, 사교 활동도, 취미 생활도 내가 살면서 했던 모든 행위들은 나의 어려움을 밀어두는 데 유효했다. 너무 늦게 깨달은 너무 늦게 온 자각이다. 이 자각이 없다면 나의 삶은 살아남기 위한 회피의 연속이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