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드러내놓고 기뻐하기도 어렵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는 더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기쁨을 나누고 싶었지만,
이게 신춘문예도 아니고 문학지에 등단한 것도 아닌데
이 일을 알리며 기뻐하기에는
내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하고 하룻밤을 자고 나니
마음뿐 아니라 생각과 행동까지도 작가가 되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내가 되었고,
새벽에 눈을 떠 어둠 속에서 불을 켜고
아직은 한밤인 바깥을 바라보며 글감을 고르는 내가 되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남의 글을 읽다가
인상적인 글을 만났다.
아마 오늘부터 내가 읽는 모든 글은
나를 작가로 살게 하고,
나를 양성시키는 작가 수업의 교재가 될 것이다.
오늘부터 글을 잘 쓰는 작가인 척해봐야겠다.
언제 잘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쓰는 척이라도 해봐야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문자로 풀어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거미집을 짓는 일에 가깝다.
지점과 지점을 연결하고,
집의 크기를 먼저 가늠한 뒤
길게 거미줄을 뽑아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실을 걸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는 일.
거미줄을 뽑고
적당한 바람에 몸을 맡길 때까지
흔들흔들 그네를 타는 거미,
그 거미가 나다.
나는 한때
개미처럼 부지런히 발을 놀리고
더듬이로 길을 찾으며
다른 개미들이 남긴 페로몬의 흔적을 따라 살았고,
꿀벌처럼 쉬지 않고 붕붕거리며
꿀과 꽃가루를 얻기 위해 움직이던 날들을 살았다.
그 모든 움직임의 시간이
지금의 거미집을 짓는 기본이 된다.
움직이던 삶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거미집을 짓고,
어느 날 날아들지 모를 잠자리를 기다리는
왕거미의 삶을 살 때가 되었다.
거미집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고,
빗방울에 젖지 않으며,
내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남기기 위해 짓는 구조물이 아니라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거미집은 공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저 걸쳐져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삶과 가장 닮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인 척하는 첫날,
나는 거미가 되었다.
이제 거미줄을 뽑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