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라는 말이 닿지 않는 곳
스트레스 순위를 보면 늘 비슷하다.
이별, 사별, 실직 같은 사건들이 위에 놓인다.
겪어보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목록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부모 없는 고아,
가족이 있어도 가족에게서 소외된 아이.
이 상태들은 순위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아마 대중적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사건처럼 설명하기 어렵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스트레스의 ‘정도’로만 본다면
이것들은 아주 깊은 쪽에 있을 것 같다.
이별이나 사별처럼 무언가를 잃는 일이 아니라,
애초에 기댈 바탕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스트레스’라는 말 자체가 어색해졌다.
이 단어는 너무 정리되어 있고,
너무 고급한 감정을 가리킨다.
부모 없음이나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아니다.
긴장도, 과부하도 아니다.
그건 감정이라기보다 조건에 가깝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이런 상태 앞에서 지나치게 말끔하다.
언어가 삶을 덮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야멸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어떤 삶은 아직 이름을 갖지 못했다.
통계에도, 순위에도, ‘스트레스’라는 단어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내어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