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거든요. 쉽게 손 닿는 아무 데나 두거나 잘 둔다고 생각하지만, 시점을 착각해서 헤매게 됩니다. 차 키가 하나뿐이라 잃어버리면 안 돼요.
지갑을 찾을 때도 놀랍니다. 분명 여기에 두었는데, 찾는 시점이 꼬여서 온 집안을 뒤지다가 간신히 찾습니다. 2시에 둔 곳과 4시에 둔 곳이 달라서, 5시에 2시에 둔 곳을 뒤지기도 합니다. 점점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어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결국 찾아내지만, 곧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습니다.
어젯밤에도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화장품 가방이 없었습니다. “차에 두었나?” 하고 갔는데 없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온갖 가능성을 헤매다가, 집에 와서 책상을 보니 누군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더군요. 내가 감추고, 내가 훔치고, 내가 행동한 것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안합니다. 언제 회복하기 힘든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돋보기를 쓰면 물건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침대 위, 책상 위, 가방 속, 부엌, 목욕탕… 집 안 곳곳을 찾아 헤매다 지쳐, 결국 모든 장소에 돋보기를 비치했습니다. 어디서든 찾을 수 있게요.
나이가 들면 인지력은 반드시 흐려진다고 합니다. 나도 예외일 수 없지요. 총명한 노인이란, 아마 건망증 없는 노인일 겁니다. 몸의 기능만큼 뇌의 기능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인지 자극을 위한 목적이 가장 큽니다. 물론 신체 활동이 그보다 더 중요하지만요.
신체기능과 인지기능, 장기 기능이 모두 저하된 노인들의 집합소, 요양원에 갔습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누워만 계셨어요. 운동기구도 없고, 빌딩의 사무실을 고시원처럼 방으로 나눠 각 방마다 누워계십니다. 비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겠지요. 시설과 환경이 잘 되어 있는 곳은 비용이 많이 들 테니, 열악한 요양원도 필요합니다.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최소한의 의료비로 운영되는 곳도, 가기 힘든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요양원에 가서 눈으로 보니, 내 미래가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언젠가 나도 저곳에 갈 몸과 삶을 가지겠지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요양원에서의 활동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춤을 추는 순간, 내가 5살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때때옷을 입고 장난감을 들고, 여러 엄마 아빠가 지켜보는 중에 재롱을 떨었습니다. 나이도 잊고, 꾸불텅 댄스가 부끄럽다는 생각도 없이, 나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손을 붙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요.
평생 해본 적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부려본 적 없는 애기였거든요. 가족 누구도 애기를 칭찬하거나 관심을 준 적 없는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희미한 눈빛과 표정 없는 얼굴 속에서, 이제 할머니가 되어 처음으로 애기가 된 순간이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어야 했던 기억. 아픈 엄마, 무능한 아빠, 상처받은 이복형제들… 그곳엔 애기가 있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양원에서 나는 그 자리에서, 애기처럼 예쁜 옷을 입고, 해보지 못한 재롱을 떨어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눈물이 났습니다. 평소 건강한 늙은이라 눈물 날 일이 없는데, 어린 시절의 결핍이 떠오르자 감정이 쏟아졌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애기였던 과거의 나에 대한 연민일까요? 간절히 사랑받고 싶었던 그 애기가 지금 눈물을 흘리는 걸까요? 기억 속 어딘가 응축되어 있던 감정이 녹아 흐르는 순간이었습니다.
힐링이었어요.
어린 아기가 60년 만에 행복해진 거예요. 이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해봤으니, 여한이 없어요. 너무 오래된 일이어서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도 잊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결핍이 이렇게 순식간에 해소되는군요.
미술치료, 글쓰기 치료, 원예치료, 역할극 치료, 상담, 사이코드라마, 가족 세우기, 자아 찾기… 온갖 세러피를 경험하며 많은 시간과 돈을 썼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유아시절의 트라우마가 요양원에서 잠깐이나마 해소되었습니다.
애기는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태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생겨나 숨 쉬고 먹고 배우며 알게 되지요. 삶 속에서 자신을 기다려주고, 친절을 베풀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며 자아와 삶에 대한 애착이 생깁니다.
요양원 봉사는
내가 평생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시간을 뒤늦게, 그러나 분명하게 살게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