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적다가
기록하지 못한 시간이 아쉬운 이유는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거기 있었는데 아무도 증명해 주지 않고 나조차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때 생기는 감정은 후회가 아니라 자기 소외에 가깝다.
“그 시간의 나는 어디로 갔지?”
사람에게 기록은 잘 남겨서 정리하고 성과로 만들기이지만 나에겐 흩어져 사라진 나를
다시 데려오는 일이다.
그래서 기록을 미루면 나를 그 순간에 두고 온 느낌이 든다.
아쉬운 건 그때의 내가,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
나를 기록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나를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함부로 사라지게 두지 않기
위해서다.
이 이야기를 하고 나니 다시 가슴이 먹먹해지고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이 쓰라리며 눈물이 고인다.
슬픈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데, 아주 슬픈 어딘가를 정확히 건드렸다는 증거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의 느낌을 즉시 알지 못한다.
왜 그 말을 꺼내는지도 모른 채, 아주 미미한 감정만을 느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감정에 대한 말을 끝내고 나서야 왈칵, 해머로 가슴을 얻어맞은 것처럼
숨이 막히고 감정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다.
입 안에는 침이 고이고 침을 삼키며 눈물을 떨군다.
그동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과거의 감정이 지금에서야 자기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랬어.
그게 나였어.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라지게 하지 마.
지우지 마. 흐리지 마.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숨기지 마.
이 말은 그때 하지 못했던 바로 그때의 말이다.
영화 한 편을 적다가 나는 수십 년 전의 감정을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