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함의 다른 표현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인생은 참 숭고하구나. 정말로 숭고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내가 이 영화를 숭고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건 분명 어떤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신호였다.
영화 속에는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든 장면들이 나온다.
인간의 껍질을 벗기고, 뼈가 드러나고, 태아를 용액에 담가 보관하고, 사람을 얼린 뒤 망치로 부수고,
동상 실험을 하고, 죽은 몸을 도끼로 찍어 화로에 넣어 태운다.
말로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잔혹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장면들은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장면들과 완전히 낯설지 않다.
우리는 동태를 토막 내 끓여 먹고, 닭의 가죽을 벗겨 삶고 튀기고, 돼지와 소를 해체해 굽고 볶고 찐다.
목적만 다를 뿐, 행위 자체는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장면 안에서는, 차이가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죽은 덩어리만 있다.
사람이 아니라, 고기. 고기가 아니라, 마루타. 마루타는 인간이 아니라 통나무다.
통나무를 토막 내고 껍질을 벗기고 얼리고 삶는다.
731부대의 일본 군인들에게도 그곳에는 인간이 없었다.
오직 마루타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끌려간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는 세계사적 사건,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회오리에 휘말린 존재들이었다.
물론 이 영화를 “일본은 잔인하다”, “일본인은 악랄하다”라는 안경을 쓰고 볼 수도 있다.
그 해석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내가 영화에서 보게 된 것은 그 비난의 지점이 아니었다.
내가 보게 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세균전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을까? 왜 이렇게까지 악랄한 수단을 써서
전쟁에서 이기려고 했을까?
이건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이해는 불가능하다.
세균전은 하지 않기로 모든 나라가 이미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그 협약을 무시하고 731부대를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