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731

731의 존재이유

by 정오의 햇빛

731부대를 떠올리면 우리는 자동으로 ‘악랄함’이라는 단어부터 꺼내 든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 세균전 연구, 설명할 수 없는 잔혹함. 이 모든 것은 분명 변명될 수 없는 범죄다. 그러나 질문을 한 단계 뒤로 물리면 다른 물음이 나타난다. 왜 그런 조직이 필요했는가라는 질문이다.


당시 일본군의 저편에는 연합군이 있었다. 그리고 연합군은 이미 원자폭탄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원자폭탄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도구다. 총과 칼, 대포와 비행기로 싸우는 전쟁은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겨누는 형태를 갖는다. 비참하지만, 그 안에는 아직 ‘대칭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하지만 원자폭탄은 다르다. 한 방으로 도시를 지우고, 인간을 숫자로 환원시키며, 전쟁을 단숨에 종결시킨다. 그것은 더 이상 페어한 싸움이 아니다. 이미 세균전을 불러올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만들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이 선택할 수 있었던 대응은 무엇이었을까. 같은 급의 무기를 만들 수 없다면, 다른 방식의 ‘결정타’를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세균전이고, 그 실험실이 바로 731부대였다. 이것이 그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개인의 광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필연이었다는 말이다.


특정 민족의 잔혹성 문제가 아니라 전쟁 시스템의 결과였다.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은 끝났다. 세균전을 더 준비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인간의 생명을 대가로 축적된 연구 결과들.

이 데이터들은 어떻게 되어야 했을까. 윤리적으로 보면 답은 명확하다.

그것은 폐기되어야 했다. 아무리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고, 인류의 생존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출발이 너무 악하다면 그 결과 역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악한 행위의 결과가 선이 될 수 없다는 최소한의 윤리가 필요하다.


만약 정말 인류에게 필요한 지식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다시 연구되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데이터는 폐기되지 않았다


731부대의 연구 자료는 전승국에게 ‘전리품’으로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731부대는 일본이 운영한 게 아니라 미국이 운영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731부대 관계자들은 단 한 명도 전범 처벌을 받지 않았다. 피해는 교훈으로 남지 않았고

데이터는 유용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결국 인류가 배운 단 하나

악은 쓸모가 있으면 거래될 수 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731부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책임도, 처벌도, 교훈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끔찍한 메시지를 받는다.

아무리 큰 악이라도, 그 결과물이 유용하다면 거래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죄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731부대의 연구 결과를 미국이 가져갔다면, 731부대는 누구의 것이었는가. 일본만의 범죄였을까, 아니면 전후 질서 속에서 재편입된 또 하나의 ‘미국의 연구’였을까.

이 이야기는 일본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악을 단죄하는 것인가, 아니면 더 큰 힘으로 그 악을 흡수하는 것인가.

731부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정의가 아니라, 침묵과 거래의 논리였다.

그리고 그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정말로 그 전쟁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반복해서 증명하고 있는 걸까.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피해는 교훈으로 남지 못하고 데이터는 유용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악은 쓸모가 있으면 거래될 수 있다.

인간은 잔혹할 수 있고 국가는 그 잔혹함을 체계화할 수 있고 전쟁은 윤리를 압살하고

전후에는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된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악을 쓸모로 환산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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