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731

삶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은

by 정오의 햇빛

삶의 가치는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순간에 있다


우리는 보통 삶의 가치를 따질 때 이런 질문을 한다.

저 삶은 쓸모가 있는가, 교환 가능한가, 결과를 남기는가, 지속 가능한가.

남는 것이 있는 삶, 축적되는 삶, 성과로 증명되는 삶만이 가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영화가 말하는 삶은 전혀 다르다.

1초 뒤에 사라져도 누구도 기억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도 그것은 이미 온전한 삶이다.

허공에 던져진 비명으로 끝나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비명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나타나는 순간 사라진다 해도 이미 삶은 완결이다. 잠깐 빛났다가 사라지는 것 명멸 그 자체가 삶인 것

우리가 알고 있던 삶은 삶의 조건이지 삶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래서 영화 속 인간들은 이런 선택을 한다.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위에 올라간 소년이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 몸을 사다리 삼아 그를 위로 밀어 올린다. 이건 영웅주의가 아니다. 삶의 기본자세다. 우리가 자식을 키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끝을 알면서도 다음을 밀어 올리는 힘,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능에 가깝다. 자기 자신을 보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다른 생을 향해 흐를 수 있다.

개체로서의 삶은 여기에 없다. 마루타 모두는 한 뿌리에서 벋어 나온 가지처럼 서로 얽히고 엮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삶의 이해가 없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워지면 죽음을 떠올린다.

결혼에 실패해서, 투자에 실패해서, 전세 사기에 휘말려서, 사랑에 배신당해서 삶을 끝내겠다고 말한다.

삶을 결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그 이전의 삶마저 무효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왜 저렇게까지 살려고 애쓰는가?”

그 이유는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다. 살아 있으니까. 그게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되었다.

왜 731부대를 다룬 영화가 나에게 삶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주는가.

나는 이제 어떤 기준으로 삶을 유효하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알게 되었다.

모든 영화는 인문학이라는 것을. 영화는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 있는 존재인가를 끝까지 밀고 가는 예술이다. 만화 영화조차도 그렇다. 영화가 그리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고, 인간이란 결국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다음을 밀어 올리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삶은 목적이 아니라 태도'였다.

목적 있는 삶이 아니라 나의 위치와 태도가 삶을 이끌고 간다.


아무리 잔혹한 영화를 보아도 그 안에는 언제나 인간의 삶이 있다.

살아가려는 몸이 있고, 출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서로를 돕기 위해 연합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731부대의 잔혹함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그것은 개인이 한 행동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에 흡수된 존재가 수행한 일이다. 인간이 아니라 체제가 한 일이다. 체제가 한 일을 개인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상하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삶과 연대 사랑과 출생과 도움 속에 있고 체제와 조직이 흡수한 인간이 벌이는 폭력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체제에 의해 도구화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버려야만 한다.


문제는 항상 같은 지점에서 흐려진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우리는 결과만을 놓고 이것을 어디로 귀속시킬 것인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이런 정리 방식에서는 같은 시행착오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원인이 정확히 처리되지 않았고, 결과가 정확히 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대한 매뉴얼이 없다는 것은 그 일을 매번 처음 겪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놀라고, 늘 당황하고, 늘 같은 자리에 머문다.


놀라운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그 일은 지금 현실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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