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의 틀 창작자의 눈 관객의 창
영화를 보는 방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비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자다.
비평가는 작품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사람이다.
화면 속 사건과 대사를 분석하고, 장르와 역사적 맥락에 기대어 의미를 해석한다.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고, 작품이 어디쯤에 놓이는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말한다.
그들의 관계 방식은 대체로 거리 두기다.
영화 속 사건과 인물을 객관화하고, 평가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를 설명한다.
반면, 창작자는 작품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 장면과 설정은 곧장 자기 내면으로 이어진다.
초능력, 전쟁, 사랑, 우주—이 모든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유의 통로다.
창작자는 영화 속 세계를 따라가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던지고, 다시 배치하고, 새롭게 의미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작품과 창작자는 경계를 잃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핵심은 단순하다.
비평가는 작품 중심이고, 창작자는 자기중심이다.
비평가는 판단을 목표로 하고,
창작자는 사유와 경험을 건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나는 마블 영화를 보고, SF 영화와 서부 영화, 전쟁 영화까지 바라보며
“모든 영화는 결국 자기 존재와 삶의 의미를 말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이미 비평가의 자리를 벗어나 창작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영화를 평가하고 있지 않았다. 영화와 함께 나 자신의 생각을 걷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그 안으로 들어가 자기 존재와 맞닿을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한다.
영화는 나에게 더 이상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관객의 자리에만 머물러 살아왔다. 재미있던가, 재미없던가—
그 기준으로 영화를 보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런데 브런치를 쓰기 시작하며, 이리저리 넘나들며 영화를 보다 보니
모든 영화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글을 쓰는 태도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글이 쌓이면,
내가 어떤 이야기를 반복해 왔는지는 한눈에 보이는 날이 올 것 같다.
나는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써지고 있는 글을 쓰고 있다.
쓰여 있는 글을 보면서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오늘 어느 브런치를 읽다가 쓰고 싶은 글이 떠올랐다.
내용과 무관하게 선물 같은 글 힐링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은 후벼 파는 글 같아서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힐링을 선물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더 솔직하게 말하면 힐링도 선물도 아랑곳이다. 어떻게 하면 잘 읽히고 댓글이 달리고 구독자가 늘어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방법이 없다. 그냥 써지는 대로 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