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노는 힘
사유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일은 힘들다.
그 사람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건너온 강을 함께 가기 위해 이제 건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완성되지 않은 생각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과 완성되지 않은 생각을 그대로 견디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동료의 일이지만 후자는 돌봄이고 노동이고 때로는 자기 소모이다.
내 사유보다 더 멀리 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존경심 없는 태도를 보는 것도 어렵다.
사유가 깊어질수록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연결될 수 없게 된다.
같은 언어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유는 누구와도 잘 지내는 나를 무너뜨리고 누구와는 더 이상 같이 말할 수 없는 나를 만든다.
사유가 깊어지기 전에는 맞춰주고 들어주고 정리해 주고 분위기를 관리하는 자리에 서있을 수 있지만 사유가 깊어지면 그 자리는 견딜 수 없는 자리가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조율자로 있을 수 없어지고 동등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옆으로 혹은 아무도 없는
자리로 가게 된다.
사유는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계속 묻게 만들고 어느 순간 이건 내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사유는 맞지 않는 자리에서 사람을 꺼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관계가 줄어들어도 숨은 더 쉬어지고 말은 적어지고 자기혐오는 줄어든다.
사유는 늘 먼저 알게 하고 나중에 말로 따라오게 한다.
사유는 관계를 가르고 사유는 자리를 바꾸고 사유는 결국 함께 할 사람을 선별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