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소비자

소비자도 생산자도 아닌

by 정오의 햇빛

시간을 소비하는 일, 시간을 생산하는 일

문화를 소비하는 행위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과 어쩌면 비슷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소비라기보다 생산 활동에 가깝게 느껴진다.

다만 그 생산은, 누군가에게 소비될지, 쌓일지, 사라질지 알 수 없는 결과물들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 소비’는 사실 문화를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내 시간을 소비하는 일에 가깝다.

반대로 생산은 소비할 대상을 전제로 한 행위가 아니라 나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일에 가깝다.


어차피 소비를 하든 생산을 하든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달라지는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하는 의식의 감각이다.

소비했다고 느낀 시간 뒤에는 어딘가 비어 있는 내적 공간을 느낀다.

반면 생산의 시간 속에는 만족감과 충만감, 그리고 보람이 남는다.

둘 다 똑같이 시간을 쓰는 행위인데도 그 시간이 남기는 감각은 정반대다.


생산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유통되거나 평가받지 않아도 의식차원에서는 이미 의미 있는 경험이다.

글은 외부를 향한 생산이기 전에 의식의 흐름을 구조화하는 행위이기에 자아를 생산하는 것과 같다. 자아가 저 홀로 스스로 생겨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날마다 조금씩 만들어간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번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 돈을 벌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나를 살기 위해 선택한 삶이었다.

그래야만 내가 존재할 수 있어서.


그걸 모를 때엔 희생하고 피해 보는 감정이 쌓이고 알게 되자 나는 나의 감각을 살고 있다는

주체감이 생긴다. 그런데 나는 그걸 오래 착각해 왔다.

타인을 위한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내가 생산감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실제로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어쩌면 정확하지 않아도 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시간 속에서 내 의식이 소비되고 있었는지, 아니면 생성되고 있었는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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