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고르기

너도 먹고 나도 먹게

by 정오의 햇빛

가계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곧바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뭘 낭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쓸데없는 데 돈을 쓰지 않는다.
기분이 허전해서 커피를 사 마시지도 않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쇼핑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만 원이 아깝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만 원이 무겁다.

영화 한 편이 만 원이면 망설여진다. 커피 한 잔도 혼자서는 마시지 않는다.
한 끼 식사 역시 마찬가지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굳이 써야 한다면 쓰겠지만 안 써도 되는 경우에는 손이 잘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 달을 돌아보면 나는 꽤 많은 돈을 쓴다. 이동하고, 운동하고, 공간에 들어가고,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만들고,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작은 사치는 거의 없는데 삶에 드는 비용은 분명 존재한다.

이 모순은 어디서 생길까.


아마도 나는 ‘오락으로서의 소비’에는 인색해졌고, ‘살아 있는 시간에 드는 비용’에는
관대해진 것 같다.

돈을 쓰기 전, 나는 무의식적으로 묻는다.
이 선택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이 시간이 나를 살아 있게 하는가.

연결되지 않는 만 원은 무겁고, 연결된 만 원은 조용히 빠져나간다.

그래서 가계부가 필요하지 않다. 줄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통제할 것도 없다.
다만 이 인색함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만 원이 아까워진 나는 궁핍해진 게 아니라 내 삶에 함부로 값을 매기지 않게 된
사람일지도 모른다.

돈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아무 데나 쓰지 않는 사람이 된 것.
만 원은 숫자가 아니라 하루의 방향이 되었다.

그런 내가 넷플릭스에도 넘쳐나는 영화를 두고 굳이 영화관에 자주 가는 이유는
당근 때문이다.


당근마켓에는 가끔 영화표가 나온다. 만 원은 내야 갈 수 있는 영화관을
오천 원이나 삼천 원에 갈 수 있게 만든다.

영화관에 가지 않으면 삼만 원의 아르바이트비를 받을 수 있고,
영화관에 가면 오천 원의 차액과 나의 경험을 얻는다.

금액으로 계산하면 알바가 훨씬 수익이 좋다.
그런데도 영화관에 가게 만드는 이 덤핑의 힘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나는 영화를 가리지 않는다. 표가 나오면 산다.


오천 원에 두 시간을 어둠 속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시간은 설명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만 원을 내고 들어가서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만족이다.

차액 오천 원어치의 만족이 아니라, 복권에 당첨된 것 같고 길에서 금반지를 주운 것 같은
이상한 희열.

영화를 보기 위해 멀리 가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는 더 계산이 안 된다. 시간 비용과 거리 비용을 생각하면
집 앞 영화관에 가는 게 맞다.


이 이상한 행동을 보면 나는 합리적인 소비자는 아니다.
그런 나를 나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당근영화가 기쁜 이유는 그 영화가 싸서가 아니라 내 삶이 정가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가격이 붙어 있고, 암묵적으로 사람의 삶에도 가격이 매겨진다.

나는 가장 낮은 값에 해당되는 차원의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당근은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 너의 삶은 정가로만 유통되지 않아.


고마워, 당근.


글을 쓰다 보면 끝은 항시 행복해진다.

내가 가장 척박하고 낮은 삶을 살아낸 것은 아니라는 이 자각.

눈물 나게 행복하다


남의 고통과 불행을 보고 비교하며 위로하지 않고

남의 기쁨과 성과를 보며 배 아파하지 않고

내 삶의 해석을 내가 가져와서 헤아려보는 일.

깨를 털고 깨 사이의 돌가루를 골라내는 일 글쓰기와 비슷하다.


글을 쓰는 건 깨를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니고 입에 넣을 수 있게 고르는 일이다.

나도 먹고 너도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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