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꿈이 아닌 바뀜
인간은 생각을 수시로 바꾼다.
의견을 바꾸고, 판단을 수정하고, 해석을 고친다.
그러나 인식은 다르다.
인식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본다라기보다, 세상이 나에게 어떻게 도착하는가에 가깝다.
보는 행위는 내 생각으로 해석되고, 편견으로 굳어지기 쉽다.
반면 도착한다는 것은 인식 이전, 나 없는 사이에 영화가, 자연이, 타인의 삶이 그 자체로 들어오는 일이다.
해석 없이, 판단과 분별이 작동하기 전에 상황은 이미 펼쳐진다.
그래서 인식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인식을 바꾸겠다고 결심할 수 없다.
다만 인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 도달할 수는 있다.
기존의 인식이 삶을 설명하지 못할 때, 나의 판단과 분별이 오류였다는 결론에 이를 때,
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낼 수 없을 때 인식은 스스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느슨해진다.
그때 무언가가 ‘바뀐다’기보다는 조용히 이동한다.
인식이 바뀌는 순간에는 깨달음 같은 표정도, 드라마틱한 선언도 없다.
오히려 인식 작용이 잠시 멈춘다.
분석도, 판단도, 기억의 호출도 없는 상태.
그냥 보고 있는 상태. 속수무책에 가까운 상태. ‘나’라는 자아의 작동이 멈춘 상태다.
영화를 보다 말고, 자연 앞에서, 혹은 몸이 먼저 움직이는 춤의 순간처럼 생각이 개입하지 못하는 틈에서
세상은 다른 해상도로 도착한다.
이 경험 이후에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는다.
다만 이전과 똑같이 볼 수는 없게 된다.
인식이 바뀐 사람은 설득하지 않는다.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보인다”라고 말할 뿐이다.
언어는 언제나 늦게 온다.
인식이 먼저 이동하고 문장은 그 뒤를 더듬는다.
그래서 어떤 글은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지 않는데도 읽는 사람을 흔든다.
그 글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곳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은 훈련의 결과가 아니다.
사건의 결과에 가깝다.
견뎌낸 시간, 무력해진 확신, 그리고 멈춰버린 사유의 순간들이 조용히 자리를 바꿔 놓는다.
인간은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인식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곳까지 살아가게 될 뿐이다.
인식이 바뀌는 순간은 기존 삶의 질서가 붕괴된 자리다.
바꿈이 아니라, 바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