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거였어

무의식적 친숙성의 자각 지연된 인식

by 정오의 햇빛

아침 운동을 마치고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첫 번째 물줄기가 유난히 따뜻했다. 운동을 했다는 만족감이 그 온기 덕분에 더 크게 부풀었다. 뜨거운 물줄기에 몸을 맡기고 멍하니 서 있다가, 2년 반 동안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이 갑자기 도착했다.

아, 그건 나의 어릴 적 집이었다.

집의 모습, 집의 분위기, 집의 환경.

내가 그곳에서 1년을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단번에 이해됐다. 결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거기서 1년을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이 내가 어릴 때 살던 집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은 알지만 아는 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

같은 공간에 살지만 눈인사조차 없는 관계.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생활 터전으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

각자는 각자의 목적과 삶만을 붙들고 살았다.

그 좋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이 나에게는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편안했다. 아무에게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아도 되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아도 되는 환경. 그것이 편했다.

물론 쓸쓸했다. 항상 혼자였다.

그곳은 이방인들이 하룻 밤을 보내는 공간이다. 집이 주는 안정감이나 안도감은 없다. 하지만 그런 걸 기대하는건 사치다. 하룻밤에 만원을 내는 나그네들의 휴식처. 어차피 집에 있을 일은 없다.

집은 휴식처도, 안식처도, 보금자리도 아니었다.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잠시 머무는 곳. 그래서 좋은 가구도 필요 없고, 커튼도 필요 없다. 여기는 아직 집이 아니니까. 사실 한 번도 집이었던 적은 없었다.

결혼을 했을 때도 그랬고, 지금 사는 곳도 마찬가지다. 집이라는 느낌이 없다. 그냥 머무는 공간이다. 누가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일 뿐이다. 특별히 꾸밀 이유도, 뭔가를 늘어놓고 즐거워할 마음도 없다. 씻고, 먹고, 자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나간다. 그렇다고 밖이 나의 공간인 것도 아니다. 안에도 밖에도,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없다.


샤워를 하다가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것이 있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아마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았다. 집이라는 것이 주는 감각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 느낌이 어떤 건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1년을 살았던 그 게스트하우스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과 아주 유사한 환경이었다는 사실을 2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나서야 깨달았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아, 그것이 나의 어릴 적 집이었구나.

집의 모습과 환경이 그대로였구나.

그래서 내가 거기서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구나.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는 건, “아하” 하고 환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아, 그거였어.”

이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몸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오래된 흉터를 바라보다가, 그 흉터가 생기던 날의 상처를 갑자기 떠올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처는 이미 다 아물었고, 기억도 없는데, 그때는 분명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만 남는다.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서야 도착한 감정. 이름 붙일 수 없는 아픔.

아, 내가 그런 곳에서 살았었구나.

그 사실을 이제서야 처음 말해보는 이 생경함과 당황스러움.

그렇다고 이 감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아파해도 쓰다듬어줄 손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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