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보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 아는 거 이외는 못 보니까.

by 정오의 햇빛


우리는 사물을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사물을 통해 자기 느낌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보는 순간 이미 감정이 앞서 있고, 그 감정의 색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느낌 속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 느낌의 감옥에 갇힌 무기수들 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 인간에게 가장 난해한 것은 인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흥미로운 것도 인간이다.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은 삶이다.

살아가는 일, 사랑하는 일, 견뎌내는 일.

그래서 모든 예술은 결국 그리로 향한다.

무엇을 그리든, 만들든, 빚든 인간의 살아감과 연결되지 않은 예술은

끝내 살아남지 못한다.

이 말들은 새롭지 않다.

너무 당연해서 교과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 문장들을 생각한 게 아니라 본 것 같다.

머리로 정리한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처럼 한꺼번에 열렸다.

그래서 놀랐고, 그래서 이걸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분명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말을 이어가다 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잠깐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그건 생각이 흐려져서가 아니라, 느낌이 말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느낌은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언어가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할 때,

나는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예술을 하는 것 같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을 표현하려고.

이 장면은 설명으로는 옮겨지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서야만 보이는 풍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논문보다 소설을, 정의보다 시를, 주장보다 고백을 선택한다.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함께 보려고.

아마 오늘 내가 본 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너무 오래 알고 있었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인식일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오늘, 인간이 왜 끝없이 인간을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한 게 아니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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