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쓰러지는 팽이가 아니라.

놓여있는 팽이

by 정오의 햇빛

브런치를 읽다가 한 줄을 읽고 더 읽고 싶지 않아 진 적이 있다.

재미없어서도 아니고, 내용이 뻔해서도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조차 알기 전이었는데 그냥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건 여기서 이미 멈춰 있구나.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답답하다’ 거나 ‘유치하다’는 감정이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짧은 예감 같은 게 스쳤다.

아, 이건 이런 쪽이구나. 아, 이건 좀…



나는 그때 처음으로 글이 앞으로 나아가려는지, 아니면 지금 상태를 고정하려는지를

내용보다 먼저 느꼈다는 걸 알았다.

살아 있던 무언가를 안전한 위치에 고정시키고 그 상태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는 글.

독자를 부르기보다는 자기 방 안에 머무는 글.

그래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거부감도, 비판도 아니었다.

그냥 여기서는 내 의식이 확장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물론 이 예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한 줄만 보고 글 전체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감각은 검증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검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분명한 게 하나 있다.

그 예감은 그 글의 진실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나에 대한 정보였다는 것.

지금의 나는 움직이지 않는 말에 오래 머물 수 없고, 이미 정리된 감정 안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한 줄만으로도 이 글은 나를 데려가지 않겠구나,라는 걸 알아차렸을 뿐이다. 이 경험이 신기했던 건

내가 뭔가를 더 알게 돼서가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멈추는 사람인지를

조금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다는 건 언제부터인가 내용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 라움직임을 감지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움직이지 않는 글 앞에서는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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