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의식의 끄나풀을 따라서

by 정오의 햇빛

어제 극장에 가려고 영화관에 도착했는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직전에 가방 정리를 하면서 ‘물건은 항상 같은 자리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든 걸 한 통에 한 공간에 쑤셔 넣으면, 뭐가 어디 있는지 몰라 몇 번이고 뒤적이게 되고, 결국엔 가방을 쏟아야 하니까.

그 생각을 하자마자 핸드폰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들고 있던 쇼핑백을 세 번이나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 핸드폰이 여기에 없구나.’

차를 뒤졌고, 그다음엔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쓴 순간을 떠올렸다. 마지막 통화, 마지막 장소. 아, 거기 두고 왔구나 싶어서 다시 그곳으로 갔다. 다행히 핸드폰은 그대로 있었다.


30분이 흘렀고, 영화는 간신히 시작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극장에 들어갔을 땐 이미 시작되는 장면의 절반쯤이 지나가 있었다. 장면은 예측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대사는 놓친 상태였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찾은 게 다행이라기보다, 마지막 둔 장소와 마지막 통화를 기억해 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게 기억나지 않았다면, 찾을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내가 한 행동의 끄트머리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치매에 걸리면 자신이 물건을 두고도 누군가 훔쳐갔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고도 먹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해도 배는 부를 텐데, 그럼에도 생활은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아이는 해결 능력이 없어서 보호자가 필요하고, 치매 노인은 기억이 없어서 보호자가 필요하다.


그제야 알게 됐다.

해결 능력이라는 건, 과정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내가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는 이유는 과정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날마다의 생활은 반복되는 과정이다. 반복할 수 없게 되면, 매번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빈 종이를 받아 드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빈 종이에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빈 종이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찾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금의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아직 뇌졸중에 걸리지 않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고, 기억의 끄트머리를 붙잡을 수 있는 상태로 늙어갈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글까지 쓸 수 있는 정서력도 감지덕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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