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브런치에서 깜짝 놀랄 문장을 읽었다.

by 정오의 햇빛


“청결한 파리는 없고 선한 모기도 없고, 추해질 망정 나비는 피 빠는 법을 배우지 않는데 그게 천성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한동안 멍해졌다.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글로 남길 수 있을까.

파리가 더럽다는 건 누구의 기준인가. 모기가 악하다는 판단은 어디서 왔는가.
나비가 피를 빨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곧바로 선함이 되는가.

그 문장은 ‘천성’을 말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천성을 말살한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서열을 매긴다.
살아 있음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한가 불쾌한가에 따라
선과 악, 미와 추를 나눈다.

파리는 파리로 태어났고 모기는 모기로 태어났고 나비는 나비로 태어났다.

그것뿐이다.


그들의 생존 방식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고, 의도가 아니라 구조다.

인간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
“그건 천성이야.” 하지만 그 말속에는 관찰이 아니라 판결이 들어 있다.
설명이 아니라 단죄가 들어 있다.


그 문장을 쓴 사람도 마찬가지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며 서열을 매기는 그 사고방식.
파리를 더럽다고, 모기를 악하다고, 나비를 선하다고 말하는 것과 글쓴이를 “자신을 모르는 자”라고 말하는

나도 본질적으로 같은 차원이다.


나는 그런 태도를 견디지 못한다.
존재를 설명하지 않고 판단하는 사람, 살아 있음의 방식을 도덕으로 재단하는 사람을.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상처이기 때문이다.
존재가 왜곡되는 순간을 너무 많이 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천성을 빌려 천성을 훼손하는 말들 앞에서 계속해서 불편해할 것이다.

그건 예민함이 아니라, 내가 세계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감각이자, 본질을 지키려는 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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