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병 모르면 약
나는 지연이가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그 마음은 지연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견딜 수 있는 지연이를 만들어두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지연이는 큰 불행도, 큰 갈등도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지연이의 삶을 묻지 않으면서도 이미 하나의 방향을 정해두고 있었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편안하게.’ 그건 축복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의 한계가 만든 바람이었다.
지연이의 실제 삶이 어떤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지연이를 그 지점에 두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연이의 바람은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둔 그 지점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지연이의 주변을, 지연이의 사정을, 지연이의 삶의 상태를.
알아버리면 다시 책임지고 싶어질까 봐, 다시 견디려 할까 봐.
간신히 벗어난 양육을 또 집어들까 봐.
이건 외면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고 지연이의 삶을 존중하는 일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때로는 그 사람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만 남겨두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감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감당하지 않으려면 몰라야 한다.
근데 알아도 감당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