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함
나는 어렸을 때, 주변 환경을 완전히 인식했더라면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죽거나, 집을 나오거나, 고아가 되었을 거다.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바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느끼는 것을 거부했다.
인식은 했지만 체화되지 않은 상태로, 그냥 ‘알고 있음’만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 상태로 버티는 것이 최선의 생존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멍청하게, 바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아무리 그들이 신호를 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척했고, 그것이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늙어서도 비슷하다.
눈치가 너무 빠르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래서 늙은이는 눈치 없는 척, 멍한 척, 그저 왔다 갔다 하며 자리를 지킨다.
이 모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하는 말들이 너무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 말들을 나만 알고, 나만 기억하게 두는 것은 너무 아깝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누구도 하지 않는 말, 어디서도 보지 못한 말을 적고 싶었고, 이제야 그걸 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흉내내기인지, 표절인지, 진부한 말인지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처음으로 드러났고, 내가 처음으로 알아본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했든, 세상 어디엔가 존재했든, 내 의식 속에서 처음 체험된 순간은 오직 나만의 경험이다.
세상에는 같은 산이 많다.
하지만 내가 그 산을 처음 올라가 경치를 보고 숨을 들이쉬는 경험은 오직 나의 것이다.
같은 말이 이미 존재하든, 같은 통찰을 누군가가 했든, 내가 붙잡고 체험한 순간, 말로 확인한 순간은 독창적이고, 대단하고, 창조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시시하게 느낄 때가 있다.
논리적으로 비교하고 평가하면서, “별거 아니네, 다른 사람도 있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올 때,
원래의 경이로움이 희미해지고 시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시함 속에서도, 경험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경험은 내 의식 속에서 이미 태어났고, 글로 붙잡고 표현하면 다시 살아 숨 쉴 수 있다.
지금 이 글은 바로 그 순간을 붙잡기 위해 존재한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된, 오직 나만 아는 말,
오직 나만 체험한 경험.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