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지점

멈춤

by 정오의 햇빛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일상적인 대화는 할 수 있다.
밥 먹었어? 오늘 뭐 해? 어디 갈까?
그 정도의 말들은 아직 가능하다.

하지만 사유를 나누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유를 나누지 않아도
관계는 성립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니,
사유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버렸다.

사유가 관계에서 빠질 때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만남은 줄고
피로도는 줄어든다.
사유는 글과 몸으로 돌아간다.

머리에서만 돌던 생각들이
아래로 내려온다.
신체의 감각이 되고
행동이 된다.

더 이상
타인과 공유하지 않아도
자체로 충분한 상태.

누군가를 통해
도달해야 할 곳이 사라진다.
혼자 걸어갈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사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존재의 산물로
남아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몹시 신이 난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신남.
배고픈 척을 하는 것 같은 기분.

간질간질하고
허파에서 바람이
푹푹 빠지는 느낌.

기분이 너무 좋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잡히지도 않고
잡아봤자 아무 의미도 없는 지푸라기를
붙들겠다고
허공에 손을 휘저었던 것 같다.

잡을 때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놓아버리고
그러면서도 또다시
확실한 지푸라기를
잡겠다고 허우적거렸다.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어디엔가는 매달려야 한다고
믿으면서.

그런데 지금은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끈을 잡고
올라갈 필요가 없다.
그냥 여기에,
이렇게 있어도 된다.


이제야 알았다.

나는
추락 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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