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가 끝난 아침

감정은 자아성장의 지표이다.

by 정오의 햇빛

나는 성도의 태도가 늘 마땅치 않았다.

속으로 만날 때마다 욕을 했다.

싹수없는 새끼, 고마운 줄 모르는 새끼, 인사도 할 줄 모르는 새끼, 지가 받는 그 배려의 단 1%도 상대에게 돌려줄 줄 모르는 새끼


테니스를 치면서도 늘 갈등했다. 쟤랑 진짜 치지 말아야 되는데 하면서도 8개월을 쳤다.

그는 참 밉살스러웠다.

나는 그를 규정했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저런 모양으로 살고 있다고. 그를 미워했다.

어딘가가 고장 난 채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미워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미움의 밑바닥에는 늘 같은 말이 맴돌고 있었다.

저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벽마다 테니스 연습상대가 되어주었다.

물론 나도 연습이 필요해서 같이 하고는 있지만 어딘가에는 내가 그를 도와주고 있다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봉사 비슷한 감정.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온기를 기대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시선의 교환.


특별히 냉랭하게 군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시선이 붙들리지 않는 짧은 일별의 순간

마치 나에게 단 5초도 쓰기 싫어하는 듯한 태도들.

그렇게 해석하는 나에게도 문제가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관계 제스처도 아끼는 듯한 태도는 내 안 어딘가를 계속 긁어댔다.

자존감이든 오래된 트라우마든 자격지심이든 반복해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강도로 건드려졌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쟤는 밉살스러운 애가 아니라 불쌍한 애구나.

나이가 오십이 돼도 그 장애 소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라지 못한 어린이

그가 나를 대하는 그 태도 그대로 자기 자신을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에게도 냉랭하고 자기에게 인색하고 자기에게도 배려를 모르는 사람

그의 내면에는 소외된 아이 하나가 계속 서 있었을지 모른다.


그 아이는 얼마나 쓸쓸할까.

얼마나 허름하고 비루하게 느껴질까

내가 느끼던 상처가 어쩌면 그의 내면에서 매일 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성도는 더 이상 미운 사람이 아니었다.

연민이 올라왔다. 긍휼이 올라왔다.

나는 오늘 아침 그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나의 희망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가 변하길 바라며 미워했다.

내가 같은 태도로 친절하게 대하면 조금은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변할 이유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미움은 사라졌다.


아.

저 모습은 더 이상 나의 모습이 아니구나.

그게 더 이상 내 모습이 아닌 것을 알게 되기 위해서는 계속 봐야만 했다.

투사가 끝나는 순간이다.


오늘 아침

나는 누군가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던 기대를 놓았다.

그를 통해 매일 내 안을 상대의 모습이라고 미워했던 시간이 끝났다.


입고 있는 분홍 털스웨터가 다른 날보다 더 포근하고 날 사랑스럽게 감싸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찰나의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