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가 끝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며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긴 밤 동안 뇌는 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고 있었지만 어딘가에서는 계속 사유가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깨어나는 순간 그 사유와의 접속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대단한 경험이다.
오랫동안 꿈속의 이야기를 만지고 싶었다.
늘 깨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나는 항상 한 발 늦었다.
마치 상사화처럼 꿈속의 나와 깨어 있는 나는 서로 다른 계절을 사는 존재 같았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날 때는 꽃이 없다.
그런데 오늘, 아주 짧은 순간 꽃인 나와 잎인 내가 서로를 알아보았다.
오늘은 그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붙든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붙들었다.
그 순간 술래잡기에서 못 찾던 마지막 아이를 찾아낸 것처럼 덩실덩실 팔다리가
따로 흔들리고 안에서 환호가 솟구쳤다.
잠과 깨어 있음 사이를 오가던 그 나를 드디어 만났기 때문이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사실 부차적이다.
나는 ‘생각’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밤새 ‘사유하는 나’를 만났다.
생각이 사라질 때마다 아쉬웠던 건 아이디어가 날아가서가 아니라
희미하게 감지되던 그 사유의 주체를 놓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밤새 머릿속에서 만지고 있던 사유를 글로 빚어 놓은 것이 오늘 올린 카타르시스라는 글이다.
내가 나를 만나 내가 한 생각의 한 조각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시간
이 감각은 눈물겨운 통합의 느낌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며 생사도 알지 못하다가 서로의 얼굴을 더듬어가며 확인하는
이산가족상봉 같은 순간
늘 같은 몸 안에 있었지만 서로의 시간을 살지 못했던 나와 나.
잠 속의 나와 깨어 있는 나
오늘 새벽 아주 짧은 시간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서로를 만나 놓치지 않았다.
이제 글은 창작이 아니라 받아쓰기가 될 것이다.
몸과 사유가 흘러가는 대로 새벽의 펌프질이 멈추지 않는 한
솟구치는 물줄기를 그대로 담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