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년 타일이네...
새벽 비몽사몽중에 중얼중얼 무언가를 길게 말했다.
분명 이야기를 다 했다는 기억은 있는데 녹음을 하지 않은 채 다시 잠들어버렸다.
말했다는 기억만 남고 건져 올린 것은 없다.
건진 게 없어 적을 것도 없다. 텅 빈 마음으로 브런치를 열었다.
거기에는 너무나 흥미로운 글들이 있었다.
이것이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소설적 같았다.
읽으며 나는 이상한 시간 감각에 빠졌다.
나는 60년 전에 멈춰 있고 사람들은 60년을 달려 지금 여기에 도착해 있는 것 같은 느낌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브런치의 글쓰기 수준이 내가 보기에 거의 천재작가 수준 같다.
눈을 돌릴 수 없다.
이건 유튜브와 무엇이 다를까?
유튜브는 떨어지는 팝콘을 받아먹는 일 같다.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된다.
속도도 자극도 내가 느껴야 할 것도 이미 정해진 듯하다.
브런치는 다르다.
커다란 팝콘통에 손을 넣고 내가 직접 집어 먹는 느낌이다.
멈출 수도 있지만 멈추지 않는다.
먹고 난 다음에 입안 가득히 남아있는 가짜 버터의 느끼함과
옥수수껍질의 파삭 거림이 목구멍 안쪽까지 남는다.
양치질로도 지워지지 않는 잔여감.
오늘 아침의 브런치가 그랬다.
읽으며 나는 내 자리를 본 것 같았다.
이미 잘 짜인 니트 옷이 사천 원, 오천 원에 시장에 나와 있다.
그런데 나는 니트 한 벌을 짜겠다고 방적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 같다.
실을 뽑고, 구조를 만들고, 아직 한 코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채
기계를 조립하고 있는 사람.
내가 뭣 때문에 시간을 들여 이런 짓을 하고 있지?
완성품은 이미 저렴하게 팔리고 있는데.
그래도 의미가 있다면
그건 시간을 쏜살같이 흘려보냈다는 사실일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은 나는 방치된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두 발로 걷고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오늘은 허탈했다.
텅 빈 우물 안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완성된 니트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니트가 짜이는 과정을 보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왜 이 코가 이렇게 엮이는지, 왜 이 감정이 이렇게 이어지는지, 왜 이 문장이 여기서 멈추는지.
나는 결과보다 구조에 집착한다.
그래서 느리고 사람들과 어긋나고 비교 앞에서 무너진다.
오늘 잃어버린 꿈처럼 나는 늘 건져내지 못한 무언가를 향해 글을 쓴다.
이미 완성된 세계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감각을 붙잡으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방적기를 만든다.
남들은 이미 니트를 입고 있는데 나는 아직 실을 뽑고 있다.
그게 무의미한가?
모르겠다.
다만 오늘도 나는 시간을 흘려보냈고, 그 시간 속에서 나를 조금 더 보았다.
아마 그것이 지금 내가 만드는 유일한 옷일 것이다.
입을 옷도 내다 팔 옷도 아닌 옷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 하나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