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과 존재사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를 연습합니다.

by 정오의 햇빛


기능과 존재 사이

글을 읽어서 깨달음으로 갈 수 없다.

강의를 들어서 깨달음으로 갈 수 없다.

배우고, 읽고, 듣고, 선명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역시 깨달음으로 갈 수는 없다.


그것들은 방향을 알려줄 뿐이다.

자세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안내서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여행 안내서가 있다.

내가 직접 써낸 안내서조차

다른 안내서들을 참고해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이 안내서를 들고

직접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 안내서가 진실인지,

그 길을 따라가면 도달할 수 있는지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나는 글을 남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다.

내 생각을 남기고 싶어서도 아니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해서 쓴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글조차 쓰지 않으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말로 이해해버린 것 같다.


존재로 존재하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그 상태를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서 바느질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의미 있는 활동을 찾아 헤맨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일.

내가 쓸모 있다고 느껴지는 일.

아마 존재로 있는 게 두려워서일 것이다.


나무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

신호등도 24시간 쉬지 않는다.

보도블럭도 밟히는 일을 한다.

개미 한 마리도 풍뎅이 한 마리도 움직인다.


세상은 전부 “무언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나는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1분을 하려고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심장.


나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호가 바뀌면 엑셀을 밟아야 하고 핸들을 조종해야 한다.

도로 위에서 단 한 순간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없다.


의도를 내려놓으라니.

목적지를 포기하라는 말인가.

안전 운전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이 순간 나는 존재로 있을 수 없다.

나는 차에 달린 운전기기로 존재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 말을 들으면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왜 그 말이 죽으라는 말처럼 들리는가.

매거진의 이전글사라지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