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왕국의 시민은 누구인가?
배추 우거지에 돼지 등뼈. 마늘, 청양고추, 우거지, 된장만으로 끓여낸 우거지 뼈국
편안한 맛이다. 먹기도 간단하고 맛도 순진하다.
음.. 그렇지 이맛이지.
레시피가 필요없다.
계량컵도 스푼도 필요없다.
그저 오래 끓였을뿐이다.
그런데 이 한 그릇이 사먹는 감자탕보다 그윽하다.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데 몸안 가득 퍼져나간다.
왜 세상은 더 맛있게 만들라고 할까?
더 기름지고 달고 짜게 더 먹히게.
그리고 살찌게. 살찐 후엔 절망하게.
그건 마치 패션과도 같다.
나를 연출하는 옷처럼 내가 먹는 음식으로 나를 연출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정도의 음식을 먹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취향과 이런 수준을 가진 사람이다.
음식이 정체성이 된다. 플렉스한 소비가 자기 소개가 된다.
SNS에 다퉈 음식과 팔에 두른 시계와 어깨에 걸친 명품외투가 경쟁적으로 업로드된다.
오늘 나의 뼈국은 다르다.
간편하고 실용적이고 최적의 맛.
나는 그런 사람이다.
모든 일을 간편화하고 생각은 실용적으로 하며 최적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
성공방정식도 매뉴얼도 템플릿도 성경도 논어나 맹자도 필요없다.
내 손에 들려있는것 내 발밑에 깔려있는 것 주변의 너절한 넝마들을 이용해
삶을 꾸려간다.
그럼에도 부족함이 없다.
왜 미디어는 결핍을 부각시키고 충동질하는가?
충분하다고 이만하면 됐다고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다.
여기까지 오고 나니 저절로 답이 떠오른다.
그것만이 미디어의 살길이기 때문이다.
결핍을 만들어야 욕망이 생기고 욕망이 있어야 소비가 움직인다.
소비자들을 양떼 몰듯 한 곳으로 몰아 넣고 그 몸에 붙은 북실북실한 털옷을 벗기려고.
벗겨진 양은 털이 저절로 자라지만 사람은 덕지덕지 붙여야 한다. 몸에서 솟아나지 않는
따뜻함과 부유함을 만들기 위해서 미디어에 의지한다.
그러나 진정한 따뜻함과 부유함은 더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미 충분한 것을 알아보는 감각. 멈출 수 있는 능력
오늘 한 그릇의 뼈국이 내게 말했다.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