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이해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방정식이다.
인수분해다.
남들은 다 푸는 문제를 나는 풀지 못했다.
왜 못하는지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공부못하는 애로 살았다.
수학을 몰라도 삶은 굴러갔다.
시험도 끝났다.
굳이 고백할 일도 없었다.
노력을 안해서 몰랐을까.
물론 안했다.
노력하면 풀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전에 노력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이해심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력없는 사람이라고 정리했다.
수학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전생탓을 해볼까.
공황이라고 불러볼까.
깊이 생각해볼 일도 아니다.
모든 의문이 풀리고 나에 대해 이해가 끝나던날
문득 일생의 마지막 의문을 풀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정말 인수분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방정식을 배우기로 했다.
선생을 만나기 전날 새벽에 잠을 깼다.
섣달 그믐날 목욕탕에 가기전 부엌에서 애벌 목욕을 하듯
나는 새벽 세 시에 수학 문제를 펼쳤다.
너무 모르면 창피할 것 같았다.
1차 방정식을 풀고 2차 방정식을 들여다 보고 인수분해를 따라 적었다.
풀이를 보면서도 나는 풀지 못했다.
네시간 뒤 볼펜을 내려놓고 어두운 창밖을 보았다.
이건 수학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공식과 문제풀이를 보면서도 손도 머리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일까.
여명이 밝아오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혹시 나는 공통인수가 사라지는 과정을 몸으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인수분해는 공통인수를 찾아내는 일이다.
어릴 적 나는 어떤 관계에서 공통인수처럼 지워졌다.
괄호안으로 밀려난 채 정리되었다.
인수분해를 이해하는 순간
그 일이 설명되어 버릴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닐까.
나는 몰라야 했다.
그래야 질문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이해하지 않음으로 존재를 붙들고 있었던 어린 나.
삭제된 뒤에도 사라질 수 없었던 존재였던 나.
지금의 나는 그 아이에게 묻는다.
이제 이해해도 괜찮을까.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를 인정해도 괜찮을까.
자신을 이해한다는 말은 어쩌면 지워진 항을 다시 써 넣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인수분해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나홀로 브런치에 나를 새겨넣고 있다.
여기 지워지지 않는 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