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길들이기4

소설이었어. 끝

by 정오의 햇빛

영화 직장 상사 길들이기는 여주인공의 소설이야기였다.

생존한 사람은 그 여자 하나였다. 직장 상사도 사고당시 죽었다.

여주가 브래들리와 격렬히 싸우면서 당신과 나만 살아남은 이유가 뭐겠어? 라는 말을 했다.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살아남은 이유는 말해주지 않고 관객이 알아서 이유를 찾아 내야 했는데 장면이 너무나

처절해서 생각할 틈이 없었다.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이 없는 자.

벗어나려는 자와 통제하려는 자

눈알을 쑤시면서 피를 흘리는 장면은 어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괴이한 격투장면이다.

끔찍한데 실소가 비어져 왔다.

저런 난투극은 여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남자의 폭력이 아니다.

권력이 없고 저항 수단이 없는 무력한 남자는 결국 여자처럼 가장 취약한 곳을 노린다.

어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눈깔 찌르기였다.

명치 치기 정도는 용납할 수 있다. 복부에 깊숙히 칼을 박고 비트는 것도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눈알을 호벼파는 거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하는 느낌이었다.

저건 완벽하게 여자의 공격이다.

수단이 거의 사라진 자의 절박한 폭력.


여주가 구조대는 오지 않는다 하고 외치는 장면도 브래들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구조될 가능성이 없는 오지 섬임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이야기를 다 썼다고 생각한 순간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아...

그게 아니었잔어.


여주는 무인도 생환기를 소설로 쓰면서 인싸가 되었다.

브래들리와의 우왕좌왕과 약혼녀의 죽음 또 남자와의 격투장면들은 현실이 아니라 여주의 소설 속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모래에 파묻힌 채 약혼녀의 다이아 반지 낀 손만 묘비처럼 서있는 장면은 얼마나 코미디스러운지.

마치 이 이야기는 소설입니다. 라고 팻말을 세워놓은 듯 한 장면이었다.


여주의 소설이라 결론이 나니 모든 장면이 이해된다.

작가의 세계에서는 윤리의 심판자가 없다.

그래서 세 명을 죽이고도 오픈카를 타고 웃을 수 있다.

현실이라면 악녀 서사. 소설이라면 블랙코미디.


그러니 이영화가 찝찝함으로 남는 것은 영화를 제대로 끝까지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나의 해석이 재미있어서 브런치에서 직장상사 길들이기에 관한 글을 찾아 보았더니 여주의 소설이라는 언급은 없고 모두 표면적인 이야기에 머물러 있어서 실망했다.


작가의 세계에서는
윤리의 심판자가 없다.

그래서 세 명을 죽이고도
오픈카를 타고 웃을 수 있는 거죠.

현실이라면 악녀 서사.
소설이라면 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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